구본준 LG그룹 고문 이 쏴 올린 ‘계열 분리의 공’이 그룹 주요 계열사의 수장을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하현회 LG(003550)유플러스 부회장이 LG그룹 부회장단을 이루고 있던 네 명 가운데 제일 먼저 신(新)그룹을 일구는 구 고문을 따라가게 됐다. 25일 LG유플러스 정기 임원 인사에서 용퇴 소식을 전한 하 부회장은 구 고문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 재계는 그의 퇴진을 시작으로 구 고문의 계열 분리가 본격화됐다고 보고 있다. 이로써 고(故) 구본무 전 LG 회장 체제의 핵심 축이었던 부회장단 다섯 명 가운데 조성진·하현회 부회장이 잇따라 용퇴하며 자연스럽게 ‘구광모 체제’가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하현회, 新그룹으로 갈 듯
하 부회장은 지난 2013년 LG전자(066570)에서 대표이사 직함을 처음 달았다. 그가 부회장으로 승진한 시기는 2017년으로 취임 이후 1년간 지주사에서 머물며 그룹 경영 전반을 다루다 권영수 ㈜LG 부회장과 자리를 바꿔 LG유플러스로 왔다. 부회장단의 ‘원 포인트 인사’를 두고 당시 재계에서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지주사 등에서 오랜 시간 인연을 쌓아온 구 고문과 하 부회장이 LG유플러스를 중심으로 한 계열 분리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구 고문이 계열 분리를 통해 거느리게 될 핵심 기업이 LG상사(001120)와 LG하우시스(108670) 두 곳으로 압축된 가운데 ㈜LG는 26일 오전 열리는 이사회에서 일부 계열사의 분리를 다루는 안건을 처리할 계획이다.
반도체 설계 회사 실리콘웍스와 화학 소재 제조사 LG MMA도 구 고문 아래로 들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하 부회장은 구 고문이 거느리게 될 신그룹 체제 아래 LG상사 등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계열사의 이사회가 종료된 후 같은 날 늦은 오후 부회장단과 사장단에 대한 연말 정기 인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다만 구 고문을 따라가는 하 부회장과 달리 수년째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차석용 LG생활건강(051900) 부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내년에 취임 3년 차를 맞는 신학철 LG화학(051910) 부회장은 유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재계의 전망대로 부회장단이 대거 유임된다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 경영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을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기존 장수들에게 신뢰를 보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울러 전지 사업 부문을 분사하는 LG화학의 경우 신 부회장이 분사 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의 이사회 의장을 맡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코로나19 종식 시점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올 한 해 좋은 성과를 낸 부회장단의 노련한 경영술을 최대한 활용해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유지하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인사는 성과주의·여성발탁 뚜렷
이날 LG유플러스는 하 부회장이 물러난 자리에 컨슈머 사업총괄 사장을 맡고 있던 황현식 사장을 선임했다. 황 신임 사장이 무사히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친다면 LG유플러스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20년 넘게 이어온 풍부한 통신사업 경험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그룹 안팎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황 신임 사장은 1999년 LG텔레콤에 입사해 강남사업부장·영업전략담당 등을 역임하며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영업 및 영업 전략을 두루 경험했다. 이후 ㈜LG 통신서비스팀을 거쳐 2014년에 다시 LG유플러스에 합류했으며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LG유플러스의 모바일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LG그룹에서는 유일하게 사장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올해부터는 모바일과 인터넷(IP)TV, 인터넷 등 스마트 홈을 통합한 컨슈머 사업총괄 사장을 맡아 LG유플러스의 유·무선 사업을 유능하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같은 날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디스플레이는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 아래 사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이현우 TV운영혁신그룹장, 김희연 BID/IR 담당 등 세 명을 전무로 승진 발령냈다. 내년 1월 1일 자로 전무 승진하는 김희연 상무는 LG디스플레이 최초의 여성 전무로 시장과 고객의 인사이트 발굴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 경영전략그룹장을 맡게 된다. /이수민·노현섭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