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도하고 나선데 이어 자체 핵무장 주장까지 하고 나섰습니다. 김 위원장은 현재 생존 정치인 가운데 여·야 모두로부터 의제 설정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지난 23일에는 3차 재난지원금을 내년도 본예산에 미리 책정하자고 기습적으로 제안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당황시켰습니다. 다음날인 24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는 “북한이 핵을 계속 유지하는 한 우리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져간다면 우리도 핵무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 대북관과 차이점을 부각해 ‘집토끼’인 보수 유권자를 끌어안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바로 나왔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의제를 설정하고 이끌어 가는데 타고난 정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의 행보는 의제 주도권을 쥐며 파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 벌써 백 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다. 5·18 민주묘역에 잠들어있는 원혼의 명복을 빈다.” 지난 8월엔 광주 5·18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었고, 현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찬성한다며 협조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지난 총선에서 완패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내뱉은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정당’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정당’을 직접 몸으로 실현하는 양상입니다.
정의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법 공조 약속
4·15총선에서 대패한 국민의힘이 김 위원장에게 당 개혁의 전권을 줬고, 성과는 지지율 회복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마친데 이어 이제 정기국회도 마무리 국면입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그간 파격 행보에 결실이 없습니다. 정의당과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해 연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경제3법도 협조 의사를 밝혔는데 국회에서 법안과 관련한 협상은 지지부진 합니다. 물론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정지시키고,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의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데 따른 공전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국민의힘 자체 법안이 없다는 게 핵심 문제입니다. 즉, 법안과 법안의 협상과 병합심사 등을 해야 할 텐데 자체 법안이 없다 보니 협상테이블에 앉을 일도 없는 겁니다. 여권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올 만도 합니다. 실제 경제3법의 핵심 법안의 세부적 내용을 논의할 법안소위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앞서 진행된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에서도 상법 개정안 논의가 시작됐지만, 개정안의 핵심인 3% 룰에 대해서는 정부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자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3법과 연계시키자고 김 위원장이 제안했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노동개혁을 말씀 하신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각론없는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정당’
김 위원장의 책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는 그의 평생 숙원인 ‘경제 민주화’와 ‘노동개혁’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전두환이 이 말을 듣고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그냥 그대로 넣어야겠군”이라는 한마디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포함되었다 p.180~181>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할 때 노동자들의 시위가 빈번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노동관련법 정비를 제안했다. 기업노조에서 산업별 노조로 재편하자고 말이다. 그때 강력하게 반대했던 대기업 총수가 있었다. 그의 주장이 바로 “내가 만든 기업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식이었다.(중략)그 회사는 노조 때문에 큰 몸살을 앓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귀족노조로 이래저래 지탄을 받고 있다. 돈으로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던 그 대기업 총수는 그 문제 말고도 여러 가지 악연으로 나와 대립했다 p.123>
김 위원장은 상당한 저력을 가진 정치인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의제 설정 능력에 비해 각론을 꾸려가는 데 구체성이 떨어집니다. 지금이라도 소속 의원들부터 설득해 가며 자체 법안을 발의해야 여당과 협상을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경제3법, 중대재해처벌기업법, 무엇보다 핵무장에서도 실체를 가져야 당내 반발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선거를 위한 ‘레토릭’이 아니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