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1년 만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규모를 더 늘리는 ‘증액 예산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3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예산 등 5조 원가량을 반영하면서 기존 예산을 삭감하지 않고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거리 두기 상향→취약 계층 피해→재난지원금 지급’ 공식이 굳어짐에 따라 명확한 지원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인한 재정 악화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9일 국회와 정부 당국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와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등 취약 계층에 내년 초 지급할 4조 원 안팎의 3차 재난지원금과 4,400만 명분 백신 확보를 위한 예산 1조 3,000억 원을 내년 예산안에 포함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4조 원 안팎의 재난지원금을 소상공인 등에 선별 지원하려면 2조 원 내외의 국채 발행을 통한 예산 순증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거대 여당의 요구대로 정부안보다 국회 통과 예산안이 더 컸던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지난 2010년 예산안(2009년 국회 처리)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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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수조 원 내에서 삭감한 뒤 줄인 규모 이내에서 일부 증액 사업을 포함시켜 총액으로는 1조 원 안팎 순삭감시켜왔다. 헌법 제57조에 따라 국회가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관례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감안한 측면도 있었다. 실제 2010년 예산안이 지방재정 확충과 일자리 지원 확대를 위해 정부안보다 1조 원 증가한 292조 8,000억 원으로 처리된 후 2018년 -1,000억 원부터 2014년 -1조 9,000억 원까지 2조 원 이내로 규모를 축소시켰다. 현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2019년 -9,000억 원, 2020년 -1조 2,000억 원 등 이러한 기조는 이어져왔다. 정부 관계자는 “여야가 예산안 증액을 합의한다면 정부가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가 책정한 4조 원 안팎의 3차 재난지원금은 9월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마련한 7조 8,000억 원 규모의 2차 지원금보다는 줄어드는 것이다. 고소득자에게 지급됐다는 논란을 빚은 아동 특별 돌봄 지원금이나 이동통신 요금 지원 등이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정은 9월 PC방 등 12개 영업 금지 업종에 최대 200만 원의 경영 안정 자금을, 카페 등 영업 제한 업종은 150만 원 등을 지원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로 아예 가게 문을 열지 못하게 되는 피해 업종을 지원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유사한 수준의 지원책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 충격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실직·휴폐업 등으로 소득이 감소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역시 불가피하다.
결국 문제는 재원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1차 감액 심사에서 정부안 대비 줄어든 금액은 8,500억 원에 불과하다. 여당의 주장대로 국채를 2조 원 더 발행하게 되면 내년 정부 예산 규모는 556조 원에서 558조 원으로 불어나고 국가 채무는 947조 원까지 증가한다. 정부는 이미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본예산 규모를 올해 대비 8.5% 늘린 확장 재정을 편성했다. 게다가 내년에도 코로나19 재확산과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편성이 몇 차례 더 이뤄진다면 국가 채무는 1,000조 원에 육박할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지원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 피해 계층에만 ‘핀셋 지원’하고 기존 예산안에서 불요불급한 항목을 걸러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선거철이 되는 내년 이후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반복되고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까닭이다. 원윤희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재난지원금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세금은 놔두고 부채만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며 “깎을 수 있는 지출을 손봐 전체 재정 규모와 부채비율을 낮춰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