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014년 이후 처음 내년도 예산안을 정시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정국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민생과 밀접한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 만큼 공수처법은 대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수처에 대해 “매듭짓겠다”고 했고 야당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일 여야 원내대표와 예결위 간사는 비공개회동을 열고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시한인 2일 본회의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야당은 ‘한국판뉴딜 예산삭감·국채 발행 불가’를 이날 오전까지도 주장했지만, 여당이 뉴딜 예산의 일부를 삭감하는 대신 3차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하면서 예산안 처리는 합의됐다. 야당 예결위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현재 (코로나 상황이) 굉장히 엄중하다”며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지연되면 우리가 크다”고 합의 배경을 밝혔다.
사실 예산안은 합의가 아니면 파행이었다. 앞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예산안과 연동된 세입예산안 등을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는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법정시한 준수하라”는 경고다. 예산안은 세법 등 예산부수법안과 함께 처리되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해도 여당이 단독 처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야당도 ‘민생 발목잡기’ 프레임을 우려해 합의했다. 여당도 야당이 제안한 재난지원금의 본예산 편성을 받아들이면서 6년 만에 예산안은 법정시한(12월 2일) 안에 처리된다.
정기국회를 둔 여야는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격해질 전망이다. 야당이 민생과 관련한 예산안을 양보하면서 여당이 밀어붙이는 공수처법에 대한 격한 역공을 예고하면서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공수처법은 당 소속 의원 모두가 반대하는 만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여당은 공수처법 속공에 돌입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원 게시판에 “남은 정기국회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있다”며 “공수처법 개정은 이번 주 법사위에서 처리, 정기국회 안에 매듭짓겠다”며 시간표를 공개했다.
국회 일정상 2일 본회의 이후 상임위 법안심의 일정은 4일에서 8일까지다. 법사위는 야당의 반발로 파행된 상태다. 다만 국회 법사위 속기록에 따르면 여당은 단독으로 회의를 지난 25일과 26일 이틀 연속 단독으로 법사위를 열고 야당의 처장 후보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법사위에서 여당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하란 신호로 해석된다.
더욱이 여당 내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태를 보며 공수처 출범을 통해 검찰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태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윤 총장 직무배제에 반발하는 검찰을 향해 “마지막 예우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라고 일갈했고 중진 정청래 의원은 “사실상 정치 개시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거센 저항을 예고한 상태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사과와 법안 심의 및 합의 처리 없이는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법사위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우리는 사과를 해야만 의사일정을 협의할 수 있다”며 “어차피 (여당은) 오더(명령)가 떨어지면 밀어붙이게 되고 우리는 들러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이 단독으로 법사위를 열고 야당을 제외한 채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공수처를 출범한다면 대여투쟁이 대정부투쟁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5일 간의 청와대 앞 1인 릴레이 집회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인 이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1인 시위 자리를 찾아 초선 의원들을 격려했다.
당내에서는 여당이 공수처를 밀어붙일 경우 초·중진 규탄대회는 물론 국민의당과 연대한 장외집회로 대여투쟁을 확대할 명분도 확보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만을 위한 국정운영을 하면 국민적 심판,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