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9시를 앞둔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 마트 입구에서는 생소한 장면이 펼쳐졌다. 방문객들이 정문 앞에서 갑자기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잇따랐다. 입구에서 한 직원이 “오늘 영업은 9시까지”라고 안내하자 일부 손님들은 폐장을 불과 5분여 남겨놓고 급하게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이날부터 관할 지역에 대해 ‘사실상 2.5단계’ 수준의 거리 두기 강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벌어진 광경이다. 이날 폐장 약 10분 전 대형 마트를 방문한 30대 서 모 씨는 “영업시간이 달라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오늘부터 적용되는 건지 몰랐다”며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시 조치로 ‘밤 9시 셧다운’을 적용받게 된 매장의 상인들은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내방객 수가 줄었는데 영업시간마저 단축돼 울상을 짓는 분위기였다. 이 할인 매장 내 한 의류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타격을 만회해보려고 할인 매대를 만들기도 했으나 이날은 그마저도 당겨진 폐점 시간에 맞춰 정리해야 해 안타까워했다.
마찬가지 조치를 적용받는 PC방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날 서울 동작구의 한 PC방에서는 오후 8시 무렵 실내 120개 좌석 중 손님들이 앉은 자리는 11개에 그쳤다. 단축된 영업시간에 앞서 미리 손님들이 줄줄이 퇴실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이처럼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의 또 다른 PC방 직원들은 오후 9시 10분께 매장 정리를 마친 뒤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점주 A 씨는 “저녁 9시부터 새벽 동안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50%에 달하는데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속상해했다.
일부 업종 등에 대한 조기 셧다운 정책은 편의점·모텔 등 규제 사각지대로 손님들을 몰리게 하는 풍선 효과를 유발하기도 했다. 주점·음식점이 오후 9시를 앞두고 문을 닫자 술을 더 마시려는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날 9시 10분께 사당역 인근 먹자골목 내에 위치한 한 편의점에는 총 12명의 손님이 바구니에 주류와 안줏거리를 담은 채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들어가서 먹자”며 계산을 끝내고 곧장 인근 모텔로 향하는 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거리 두기를 위한 현장 정책을 보다 영업장별 현장에 맞게 해야 실효성을 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날 동작구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를 하던 김 모(24) 씨는 “스터디 카페에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일찍 닫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계적인 거리 두기 정책의 잣대를 비판했다. 인근 미용실의 한 직원 또한 “차라리 영업시간을 유지해 손님을 분산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수능을 마친 대입 수험생들이 수시모집 국면에 돌입하면서 학부모와 수험생으로 인한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직후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집중 모니터링을 시행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 대학별 논술고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2m 거리 두기 원칙을 지키지 않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