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도 은행에서 대출을 끌어모아 건물을 산 사정을 아는데,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어떻게 부탁합니까.”
부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올해 초 임대인 스스로 임대료를 일정 기간 받지 않거나 깎아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임대인을 찾아갈까 망설였다. 하지만 끝내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임대인도 힘든 판에 차마 입을 열기 어려웠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부가 주도해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은 애초부터 임대인과 임차인, 임대인 중에서도 임대료를 낮춘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을 ‘편 가르기 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부지불식 중에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대부분의 임대인은 ‘나쁜 임대인’이라는 꼬리표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하지만 임대인의 속사정도 천차만별이다. 부동산 재테크로 돈방석에 앉은 유명 연예인,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임대인만 임대인이 아니다. 임대인 상당수는 자영업자처럼 빚 폭탄을 안고 가는 상황일 수 있다. 길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임대’ 문구가 붙은 가게가 즐비하다. 실제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 2·4분기 서울 상가는 전 분기보다 2만 1,178개 줄고 음식점은 1만 40개가 사라졌다.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닫는 소상공인과 공실로 수익이 끊긴 임대인 모두 피해를 입기는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이제 ‘나쁜 임대인’은 ‘불법 임대인’이 될 위기까지 왔다. 바로 여당에서 감염병 방역 조치로 경영이 어려워진 임차인의 임대료를 전액 감액하거나 절반만 내는 법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자발적 고통 분담을 넘어 희생을 강제하는 수준까지 와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의 임대인에 대한 담보대출 상환 기간 연장,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의 지원책도 추가로 담아야 된다. 민간은행에 대한 ‘팔 비틀기’ 논란,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느냐’ 식의 역차별 논란이 불가피해진다. 자영업자의 도덕적 해이, 자영업 구조 조정 후퇴 등의 역효과도 낳을 수 있다. 아무리 선의라도 시장을 냉정하게 보지 못한 대가는 혹독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