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세계여행 후 깨닫게 된 일의 의미, “일은 에너지 충전소”

라이프점프·루트임팩트 공동기획…내일의 내:일 16. 계속 나아갈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내 일

아이돌봄 소셜벤처 자란다 박인희 담당자


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 있다고 치부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라이프점프와 루트임팩트가 공동 기획한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영화의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머릿속으로 세계여행을 그려보곤 했던 날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할 평생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다람쥐 쳇바퀴 같던 이전의 일터를 마음 설레는 41번째 여행지로 만든 이가 있다. 아이 돌봄 소셜벤처 ‘자란다’ 에서의 새로운 여행을 앞둔 박인희님을 만나 이력서의 공백이 미처 설명해주지 않는 그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희님의 경력 공백기, 그 시간 동안의 색다른 경험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눠보고 싶어요.

“‘오사부’, 오늘만 사는 부부라는 뜻이에요.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다면 평생이 즐겁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남편과 543일 동안 40개국 여행을 다녀왔죠. 물론, 그 전에는 여느 30대 부부처럼 아이를 낳고, 내 집을 꾸리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 열심히 달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10년의 경력, 직장과 집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난 셈이죠.

그래서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결론적으로 후회는 없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 이미 많이 지쳐 있어서 몇 년 후의 시간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보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두려운 세계를 마주했고, 두 사람의 힘으로 온전히 즐겁게 잘 헤쳐 나간 경험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귀국 후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바로 재취업을 시도하진 않았어요. 수입이 조금 적더라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보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스쿠버다이빙 강사가 됐죠. 여행을 다니는 동안 경험한 정말 즐거웠던 일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스쿠버다이빙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어렵게 휴가를 내서 만든 기회이고, 평생에 걸친 버킷리스트이기도 하잖아요. 필리핀에서 강사로 보낸 1년의 시간은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는 즐거운 순간을 매일 마주하는 보람으로 가득찬 시간이었어요.”

-세계여행은 휴식이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과정?

“누군가의 눈엔 그저 일탈 같은 시간이겠지만, 또 이렇게 출근을 앞두고 있는 걸 보면 저의 지난 경력이 어디론가 사라진 건 아니네요. (하하) 아무리 사소한 고민이라도 선택에 따른 장단점이 있기에 무언가 결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지난 시간 덕분에 저는 그 선택의 순간을 조금은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됐죠. 일단 선택하고 나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든 잘 해낼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진 것으로 볼 수도 있고요. 앞으로도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주저없이 제 마음이 가는 51%의 선택을 할 거예요.”

-인희님이 경험을 통해 축적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정말 멋있어요. 49%와 51%, 아주 미미한 차이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이 가는 방향이 있다면, 꼭 99%가 아니어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오랜만에 회사 생활을 앞두고 계신데 어떤 성장을 기대하며 이번 결정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한참 지난 후 알게 되더라고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주어진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때로는 즉각적으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진짜 변화를 확인하는 것은 그 틀 밖으로 나왔을 때였어요. 한달이든, 일년이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때를 돌아보면 ‘아, 내가 그 때 이런 성장을 했고, 내 삶에 이런 의미가 있구나!’라고 비로소 정리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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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장은 하루하루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돌아가 그 시간에 충실하되, 회사를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제 자신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집중해보려고 해요. 업무적으로는 주로 자란다 선생님 관리를 맡게 될 텐데요, 똑같은 직무를 계속 이어가지 않더라도 이 경험이 훗날 다른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을테니 많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제가 속한 부서의 업무만 보는 게 아니라, 자란다라는 조직 전체 그리고 이 조직이 속해 있는 스타트업 환경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아이돌봄 소셜벤처 자란다 박인희 담당자아이돌봄 소셜벤처 자란다 박인희 담당자




-다음으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인희님은 어떤 동료였고, 또 앞으로 어떤 동료이고 싶으신지요?

“일을 보고 회사를 선택하지만, 결국 그 일을 멈추게 하는 건 사람일 때가 참 많잖아요.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제일 두려운 부분 중 하나도 인간관계였어요. 누구에게나 그럴 것 같고요. 일은 잘못된 부분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죄송해요.’라는 말 한 마디로 정리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사회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에요. 친절한 모습을 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거나 반대로 그런 관계를 기대하기보다는, 저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있는 게 때로는 오래 가는 비결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공감대가 있으니까요.“

-왠지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 같아요.

“제가 이전 직장에서 연차가 쌓여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됐을 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의견을 자주 묻고 잘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함께 팀을 이루었던 후배들 역시 수동적이기보다는,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잘 표현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편이었던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당연히 성과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요. 한 번 그렇게 분위기가 형성된 후에는 새로운 분들이 팀에 합류해도 기존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잘 유지되더라고요. 이번에도 그렇게 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저의 의견이 좋든 나쁘든 어떤 식으로든 일에 반영이 되는,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환경이면 좋겠어요. 직함보다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하하)”

-마지막으로 인희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확실히 일도 쉬고 난 이후에 돌아보니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에너지를 발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겐 일이 그런 것 같아요. 저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예요. 또 한편으로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고 확인 받고 싶을 때, 비교적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실패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도리어 에너지를 받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다시 일이 하고 싶은가 봐요.”

박인희라는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이제 겨우 프롤로그 정도를 엿본 느낌이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만의 단단한 내공이 앞으로 얼마나 더 즐거운 하루하루를 써내려갈지, 그리고 그 기록이 다른 이들의 일상에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줄지 기대된다. 그의 책 한 챕터에 기록될 지금의 선택, 자란다에서의 출발이 51%의 마음을 넘어 나날이 채워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김민지 공감인 매니저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김민지 공감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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