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조치에 서울중앙지검 중간 간부들이 집단 반발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 결정을 한 뒤 나온 첫 집단행동이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 등 전직 총장 9명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 조치는 법치주의에 대한 큰 오점이 될 것”이라며 징계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선 검사들은 물론 전직 검찰총장들까지 ‘윤 총장 징계를 반대한다’는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어 반발 기류가 검찰 전체로 확산할지 주목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5기 부부장검사들은 이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5기 부부장 검사 입장’이라는 글을 올렸다. 징계 사유는 물론 징계위 구성·의결까지 전 과정에서 절차적 흠결이 존재하는 만큼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조치가 철회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법무부 스스로 약속한 충분한 절차적 권리와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며 “결국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절차적 공정’은 형해화됐다”고 지적했다. 시작부터 결과까지 부적절한 징계 처분이 검찰청법이 보장하는 ‘총장 2년 임기제’를 뒤흔들면서 결국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나아가 법치주의의 근간까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일선 검사들도 실명을 내걸고 비판 행렬에 속속 동참했다.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같은 날 이프로스에서 “그렇게 ‘공정’을 이야기하더니 결국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였다”며 ‘일방통행식’ 징계위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어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경목 수원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절차와 사유로 검찰총장을 징계하는 것이 약속했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일환이냐”며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국가공무원의 최고 인사권자이자 국가 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에게 간청하고 싶은 게 있다”며 “(윤 총장) 사례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건 아닌지 숙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에 김 전 총장 등 전직 총장 9명도 반대 글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들은 “징계 사유가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이런 징계 절차로 검찰총장을 무력화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절차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윤 총장에 대한 징계 결정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1988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도입된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보장하는 최후의 장치”라며 “이번 징계 조치로 임기가 사실상 중단돼 검찰총장이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고 소신 있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에는 32대 김 전 총장부터 문재인 정부에서 윤 총장 직전 총장을 맡았던 문무일 제42대 총장까지 총 9명이 참여했다. 다만 한상대 제38대 총장과 채동욱 제39대 총장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성명 발표에 반대했고, 다른 한 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게 전직 검찰총장 측 설명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윤 총장 징계에 대한 반발 움직임에 불씨가 댕겨진 만큼 앞으로 반발 기류가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앞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 징계 청구 이후 일선 검사에서 시작해 전체 평검사 회의가 열리는 등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평검사들의 반대 글이 도화선이 돼 수사 검사 전체로 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사흘이다. 실명을 건 평검사들의 비판 움직임에 검찰 고위층인 검사장급 이상 검사들까지 동참하면서 기름을 부었고 결국 7년 만에 평검사 회의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다만 확산 속도가 앞서 1차 ‘검란(檢亂)’ 때만큼 빨라질지는 다소 미지수다. 총장 징계로 검찰 전체 분위기가 어두운 데다 내년 초 정기 인사까지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현덕·조권형·이경운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