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강

이재무

아프고 괴로울 때 강으로 왔다


무엇이 간절히 그리울 때 강으로 왔다

기다림에 지쳤을 때 강으로 왔다

억울하고 서러울 때 강으로 왔다

미움이 가시지 않을 때 강으로 왔다

분노가 솟구칠 때 강으로 왔다


자랑으로 흥분이 고조될 때 강으로 왔다

관련기사



마음이 사무칠 때 강으로 왔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없을 때 강으로 왔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오면

나는 꽃 한 송이 사들고 강으로 왔다

강은 바다에 미치면 죽는다

ㅊ



너는 나를 보러 왔다지만, 나는 늘 그러한 내가 아니었다. 나도 흐려지거나 투덜거릴 때가 많았다. 까닭 없이 모래톱을 쓸고 가거나, 천 년 벼랑의 정강이를 할퀴기도 했다. 때론 작은 물고기가 거슬러 오르게 두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산란지에 도착한 회귀성 어종을 야멸차게 하류로 떠밀고 가기도 했다. 나는 잔잔하다가, 소용돌이치다가, 둑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물꼬를 보러 왔다가 단 한 번 헛디딘 발목을 끌고 가기도 했고, 고삐에 묶인 짐승의 숨을 끊기도 했다. 네가 늘 그러한 네가 아니듯, 나 또한 늘 그러한 내가 아니다. 강은 바다에서 죽는 게 아니라, 바다로 개명할 뿐이다. 전화번호도 그대로다. 공일공 굽이굽이 철썩철썩!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