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된다는 나름 비장한 각오로 책을 썼다. 무조건 자기 편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자신을 좀 내려놓고 대화와 타협을 하는 정치에 참여하고 일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진보 논객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또 책을 냈다. 올 들어 두 달에 한번 꼴로 새 책을 내며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의 글을 써온 강 교수가 다시 한 번 ‘독선과 오만에 빠진 진보’를 향해 펜을 들었다. 이번 신간 제목은 ‘싸가지 없는 정치(인물과사상사 펴냄)’다. 지난 10월 출간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의 연장선에서 써내려간 글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 ‘싸가지 없는 정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패배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연유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의 ‘싸가지 없는 진보’란 표현에 감화해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2014)’이라는 책을 내며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싸가지 있는 진보’로의 전환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이 지난 시점에서 강 교수는 다시 ‘싸가지 문제’를 꺼냈다. 이유는 짐작 그대로다. 기대가 무참히 깨졌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가 그런 식으로 정권을 헌납하는 바람에) ‘싸가지 없는 정치’를 버리지 않았음에도 집권에 성공했다”며 “민주당 집권 이후 ‘싸가지 없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은 물론 우리 사회가 큰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싸가지’라는 단어를 단순한 욕설로써 사용하는 게 아니다. 속된 표현이기는 하나 단어에 내재 돼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라는 뜻에 집중한다. 강 교수 표현대로 “보수 세력이 워낙 한심한 수준”이긴 하나 그렇다고 민주당의 ‘싸가지 없음’ 즉, 예의와 배려 부족이 용인될 수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싸가지 없음’은 예의와 배려 부족에서 그치지 않고 오만으로 이어진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그 예로, 야당을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청산해야 할 적폐로 간주하면서 어쩔 수 없는 순간에만 야당을 존중하는 척 연기하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를 지목하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차기 대통령이 대선 승리 연설에서 “상대방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언급한 점을 우리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적이 없으면 정치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모든 정치 세력이 적 만들기에만 미쳐 돌아가는 건 아니다”며 “문재인 정권은 ‘약자 코스프레’를 하며 ‘적 만들기’를 가장 심하게 하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일부 586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진보 완장’ 애용도 문제 삼았다. 과거의 투쟁 경력을 뽐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는 하지만, 반독재 투쟁 시절에나 필요한 논리를 여전히 내세우며 ‘진보’를 완자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들이야말로 진보 죽이기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책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과 검찰개혁이 양자택일할 성격이 의제는 아니지만, 검찰 개혁에 올인 하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을 적기를 놓쳤고, 시장을 무시한 채 급조해낸 ‘과격한 방안’을 들고 나와 문제를 악화시켰다고도 지적했다.
강 교수는 39살이던 1995년, 젊음의 열정으로 ‘김대중 죽이기’를 썼을 때와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이번 책을 집필했다고 했다. 그는 “진보주의자들은 이상하게 애국이라는 단어를 혐오하는 지적 허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애국을 좋아한다”며 “나는 우리가 ‘싸가지 있는 정치’ 즉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