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동통신 3사의 최대 화두는 ‘탈(脫)통신’이다. 이통사 수장들은 앞다퉈 ‘탈통신’ 선언을 하고 있고 이통사들의 정체성이었던 ‘텔레콤’을 지우기 위해 사명까지 변경하려 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올 하반기 조직개편을 통해 이른바 ABC(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등 비통신 사업을 전담하는 ‘신규사업부문’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본격적인 탈통신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 되는 가운데 이통사들의 탈통신 전략도 내년부터 속도를 낼 전망이다.
탈통신은 본업인 ‘통신’ 사업의 성장성에 한계를 느낀 이통사들이 찾아낸 생존 카드다. 이통사 입장에서 올 한해 통신 부문 사업 환경은 가혹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며 기대를 모았던 5세대 이동통신서비스(5G)는 이전 세대가 보여줬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신형 스마트폰 수요 감소와 알뜰폰으로 고객 이탈 등 부정적 영향을 만들어 냈다. 5G는 도달 범위가 좁은 초고주파수 대역 사용으로 인해 기지국을 더욱 촘촘히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 비용과 5G 전용 단말기 판매 부진 등으로 이통사들의 투자 속도는 더뎠고, 이로 인한 품질 논란과 고가 요금제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5G 가입자 수는 당초 올해 목표였던 1,700만에 한참 못 미친 1,100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5G에 대한 불만은 많은 고객들을 알뜰폰으로 이동시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기준 전체 알뜰폰 가입자는 전월 대비 161만명 증가한 898만1,998명을 기록하며 8월말 이후 3개월 연속 증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영향은 무선 통신 부분 실적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신형 스마트폰 판매에도 직격탄을 안겼다. 올해 삼성전자의 주력 플래그십폰인 ‘갤럭시S 20’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들이 줄줄이 흥행 참패를 기록해 이통사들의 무선사업 매출은 제자리 걸음을 걸었다. 코로나 19로 공격적인 마케팅이 줄면서 통신사들의 외형적 실적은 좋아졌지만 내실은 취약한 속빈 강정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와 가계통신비 인하 압력도 거셌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에만 두 번의 통신품질 평가 결과를 내놓는다.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이용자에게 1년에 한 번 이동통신사들의 통신품질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상반기에 이어 올 연말 한 차례 더 이통사들의 통신품질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5G 품질 논란 속 이통사들의 5G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인 셈이다. 이러한 정부의 압박은 지난 달 마무리 된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 협상에서도 나타났다.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줄이기 위해 이통사들의 일정 이상의 5G 무선국 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 “정부의 각종 규제와 가계통신비 인하 압력 등이 커지고 있어 규제 사업인 통신 비중을 줄이기 위한 이통사들의 탈통신 기조는 더욱 강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통사들의 시선은 정부 규제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성장성이 큰 비통신 분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성장이 어려운 통신 사업 대신 인터넷 데이터센터(IDC)나 자율주행 등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신사업 육성을 위해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건 SK텔레콤(017670)이다. 올해 초부터 종합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의 변화를 약속했던 SK텔레콤은 지난 10월 모빌리티 사업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해 ‘티맵모빌리티’를 만들었다. 티맵모빌리티는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인 우버테크놀로지와 내년 상반기에 택시호출 공동사업을 위한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SK텔레콤의 자회사 11번가는 아마존과 e커머스 사업 혁신을 위해 협력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내년 e커머스 업계에도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SK텔레콤은 지난 11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이 연말 임원인사를 통해 SK하이닉스 부회장까지 겸임하기로 결정되면서 내년부터 AI 반도체 개발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KT(030200)도 ‘텔레콤’ 지우기에 한창이다. 지난 10월 구현모 KT 대표는 올 3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간담회에 “앞으로 KT는 통신기업 ‘텔코(telco)’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 ‘디지코(digico)’로 변화할 것”이라며 통신사업에서 비통신 사업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예고했다. 그는 오는 2025년 KT 전체 매출 20조원 중 통신과 비통신 비중이 현재의 6대4에서 5대 5로 바뀔 것이라고 구체적인 목표까지 드러냈다. 이러한 일환으로 KT는 이달 이뤄진 조직개편을 통해 AI/디지털전환(DX) 융합사업 부문 대폭 강화와 그룹 혁신을 주도해온 ‘미래가치TF’는 ‘미래가치추진실’로 격상시키는 등 내년 비통신 부분 도약을 위한 밑그림을 완성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로서 기업간 거래(B2B)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며 B2B 브랜드 ‘KT엔터프라이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일부 공공 정보기술(IT) 사업에서 모습을 드러낸 KT는 내년부터 B2B 사업 강화를 위해 공공 사업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이통사와 달리 통신사업에 집중했던 LG유플러스(032640)도 황현식 사장 부임 이후 신성장 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아이들 나라’ 등 특화된 콘텐츠를 가진 IPTV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지난해 인수한 LG헬로비전의 실적이 올해부터 본격 반영 되는 등 통신 부분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통신·미디어 시장 환경에서 디지털 전환에 늦춰질 경우 경쟁에서 도태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LG 유플러스도 탈통신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 달 말 이뤄진 조직개편에 그대로 담겼다. LG유플러스는 스마트 헬스, 보안, 교육, 광고, 콘텐츠, 데이터 사업 등 산재된 사업 조직을 하나로 모아 ‘신규사업추진부문’을 신설했다. 이는 신사업 분야의 전문성을 한층 강화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견실한 사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부문은 5G 보급 확산, 정부 주도의 뉴딜 사업 등 추가 사업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을 ‘기업신사업그룹’ 산하에 두고 5G 기업간 거래(B2B)는 물론 스마트시티 등 신규 사업 성장을 이끌기로 했다. ‘XR 얼라이언스’ 통한 AR·VR 콘텐츠 강화와 순찰·물류 등 5G 로봇 사업, 여기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5G 활용한 자율주차 등의 역량을 가진 LG유플러스의 탈통신 행보는 내년에 더욱 구체화 될 것으로 보인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신사들은 더 이상 통신 본업만으로 실적 성장, IT 산업 내 주도권, 주식 시장의 관심 등을 견인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통신사들의 성장 사업인 비통신 사업의 성과가 필요하고, 특히 2021년은 통신 사업의 안정적 실적을 기반으로 신규 성장동력인 비통신 사업이 구체화되어 기업가치가 상승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