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법치주의 훼손과 민주주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시도로 국정 혼란을 초래한 것도 모자라 위헌 소지가 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마저 밀어붙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가치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 수호에 앞장서온 신영무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포함한 일련의 입법 강행은 헌법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현재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신 전 회장은 “이 시대의 소중한 헌법 가치는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현”이라며 “견제와 균형을 통한 삼권분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라고 역설했다. 신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28일 서울 대치동 바른사회운동연합 사무실에서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무 복귀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 복귀를 결정한 것은 헌법 정신에 따른 당연하고 올바른 판결이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데 사법부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시도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 사건이다. 프랑스 검찰총장을 지냈던 장루이 나달은 “검찰의 독립이 없으면 공정함이 없고, 공정함이 없으면 정의도 없다”고 갈파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의혹에 이어 원전 경제성 조작 등 권력 비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무리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과감한 국정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임명권자이므로 총장의 직무 수행이나 임기 보장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것은 오히려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누를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독주가 민심 이반을 초래했기 때문에 인적 쇄신과 함께 진정한 국정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발탁해 국정 운영의 전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검찰과의 싸움이 아니라 방역과 경제 활성화에 집중하는 등 국정 기조를 일대 전환해야 할 때다.
-여당은 공수처를 밀어붙일 태세인데.
△공수처는 헌법에 설치 근거가 없는데다 판·검사 등을 수사·기소할 수 있으므로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홍콩의 염정공서나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은 우리와 달리 정치적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된다. 싱가포르는 총리의 지휘를 받지 않도록 만들었으며 홍콩도 수사만 가능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중국 공산당의 ‘국가감찰위원회’와 유사하다. 최근에는 야당 추천위원의 반대를 무력화하고 여당에서 원하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므로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공수처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정을 도입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보완책은 공수처법을 폐기하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서 경찰 비대화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까지 건네받은 경찰의 비대화는 심각한 문제다. 경찰은 국내 정보를 수집·생산하는데다 검찰의 수사 지휘도 받지 않게 된다. 여권은 검찰과 달리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경찰을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가진 듯하다. 최근 불거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음주 폭행 사건이야말로 권력에 약한 경찰의 행태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검찰 개혁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듯하다. 진정한 검찰 개혁은 무엇인가.
△검찰 개혁의 요체는 검찰총장과 검사들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검찰총장에게 검찰의 인사권을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게 주어진 일부 인사권마저 전혀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제멋대로 인사권을 휘두르면서 검찰을 오히려 정권의 수호 세력 또는 충견으로 전락시키려 했다. 이래서는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일이 불가능하다.
-최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이 시대의 소중한 헌법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Rule of Law)’라고 하는 법치주의 실현이다. 법 위의 통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공권력도 합법적 권력 행사를 통해서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흔히 많은 사람이 공정과 정의를 진보의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오히려 보수의 가치에 공정과 정의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것이다. 공정한 사회는 법과 원칙이 바로 설 때 실현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법치주의가 크게 훼손되고 공정과 정의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다.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위협받는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현 정권은 헌법 가치와 위헌성 여부를 전혀 개의치 않고 정파적 이해를 반영한 법률을 양산하고 있다. 실제 여야의 총선 득표율 차이가 49 대 41 정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공수처법 제정 및 개정은 무엇보다 사법부와 검찰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으며 5·18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한다. 이 법률들은 모두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공수처법을 포함해 일련의 입법은 헌법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 국헌문란은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한 절차 없이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최근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의 조직적 국헌문란 행위가 권력과 제도를 악용해 상대를 위협함으로써 폭행·협박에 준하는 행위 및 준비·보조 행위로 보이므로 내란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주요 현안의 위헌 여부 판단을 계속 미루고 있는데.
△견제와 균형을 통한 삼권분립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다. 하지만 대다수 헌법재판관이 이념적으로 엇비슷하고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수처법이나 윤 총장 징계 관련 헌법소원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판결을 최대한 미루고 뭉갤 가능성이 높다. 헌재와 대법원이 대부분 정권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도 수십 건의 선거무효 소송에서 신속하게 법과 소신에 따라 기각 판결 등을 내렸다. 사법부가 법치주의를 지탱해주는 최후 보루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부러운 일이다.
-국회가 다수의 힘을 내세워 입법 폭주를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거대 여당이 전체 의석의 60%를 차지했다며 입법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위헌 소지가 큰 법률을 무더기로 통과시킴으로써 입법 독재를 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공수처법이나 대북전단금지법, 기업 규제 3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의회주의의 핵심은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제안·질의·토론 등 심의 과정에서 국정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 뒤 표결로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다고 헌재가 판시한 바 있다. 소수파의 토론 기회를 박탈하거나 토론 절차를 거치지 않고 표결로 결론을 내린다면 의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회의 기능은 형해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 분야에서도 여당이 규제 3법 등 재산권을 침해하는 법률들을 쏟아내고 있다.
△코로나19의 와중에 정치는 죽을 쑤고 노사 문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은 잘 버티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 경제인들이 열심히 뛰고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럴수록 규제 폭탄을 때리기보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법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자유 시장경제가 점점 더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익을 다 빼앗긴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고 기업 할 마음을 갖겠는가. 최근 발의된 ‘1가구 1주택법’도 결국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전임 회장으로서 변협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변협은 재야 변호사들의 유일한 법정 단체다. 변호사들의 공적 책무는 사회 정의 구현과 인권 옹호이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역대 변협 회장들은 변호사들의 공적 책무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고 실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최근에는 변협이 공적인 책무보다 회원들의 권익 옹호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다. 법치주의 수호에 책임을 다하는 본연의 역할을 되찾아야 할 때다.
-정권의 일방통행에 맞서 시민사회가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사회의 지식인에게 법치주의 실현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변협 회장직을 마친 뒤 바른사회운동연합을 만들어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내년 4월 보선부터 내후년 대선까지는 국민의 행복·불행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린 중차대한 시기이다. 재야 시민세력들이 더 깊이 고민해 나라의 목표를 바로 세우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He is…
1944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한 후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증권법 전공 제1호 박사로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과 개방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3년 국내 최초의 서구식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한 법무법인 세종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맡아 사법 국제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4년 시민 단체인 바른사회운동연합을 설립하고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