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겸 하버드대 벨퍼센터 교수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반도체는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와 (의미가) 비슷하다”며 차기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중 간 기술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가능성은 낮지만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두 나라의 무력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퍼거슨 교수는 28일(현지 시간) 서울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문제를 부드럽게 다루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8년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성이 높음을 뜻하는 ‘치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를 만든 그는 지난해부터 미국과 중국이 미소 대결에 이은 ‘2차 냉전’에 휘말려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주요 중국 기업과 공산당에 제재를 가해왔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퍼거슨 교수는 미중 간 경쟁의 핵심에 반도체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을 공격하고 중국은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서방국가를 따라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 대결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시대의 핵 군비 경쟁과 비슷하다”며 “중국의 큰 취약점은 수입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정교한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은 중국의 통신 장비 제조 업체인 화웨이의 반도체 부품 조달 길을 틀어막은 데 이어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SMIC도 블랙리스트에 지정했다.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낮다는 점이다. 퍼거슨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중국이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겠지만 2025년에도 중국과 삼성, 대만의 TSMC 사이에는 실질적인 기술 격차가 있을 것”이라며 “중국은 움직이는 타깃을 잡아야 한다. 한두 해가 아닌 수년간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은 새로 들어서는 바이든 정부가 기술 전쟁을 끝내주기를 기대하면서 어떻게든 기술 독립을 위한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라며 “바이든은 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을 공화당과 협력해 통과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두 나라의 기술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봤다. 퍼거슨 교수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화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두고서도 비슷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기술 경쟁이 수년 동안 지속할 수 있다”고 점쳤다. 특히 미국이 새로운 기술 표준을 내세워 중국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게 퍼거슨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중국은 5세대(G) 이동통신과 AI, 전자결제 등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미국은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을 기술 측면에서 봉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세계의 기술 표준은 미국 및 서방 세계와 중국, 크게 두 개로 쪼개질 가능성이 있다.
퍼거슨 교수는 또 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무력 충돌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그는 두 나라가 군사적으로 실제 부딪힐 확률을 낮게 봤다. 수치로는 5%다. 하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민해방군이 미국과의 국지 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이든 정부도 충돌을 피하고 싶어한다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대만입니다.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와 대만의 민주주의를 종식하려고 하고 있어서죠.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의도적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중국 내에서 대만과 통일하면 TSMC를 차지해 반도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정서가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퍼거슨 교수는 “무력 충돌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확률의 시나리오”라면서도 “각국이 다른 쪽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고 그것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에 관해서는 “내년은 급속한 경제 회복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코로나19 침체는 2008년의 금융위기와는 다르다”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며 이르면 내년 봄 이후부터는 대유행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으며 실업률도 예상을 크게 밑도는 6.7%로 내려왔다”며 “복수의 업체에서 백신이 나오고 있어 내년에 사람들은 소비를 재개할 것이다. 다시 식당과 술집을 찾고 휴가를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방정부의 현금 지급과 추가 실업급여에 가계에 쓸 돈이 많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고려 사안이다. 퍼거슨 교수는 “내년에는 전염병 이후 순환적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며 “금융위기 이후 때 같은 장기 침체 우려는 설득력이 없으며 내년 하반기에는 이점이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와 새 바이든 정부의 관계에 대해서는 보건 문제부터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퍼거슨 교수는 “(미국과 비교하면) 대만과 한국은 코로나19를 잘 대처한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코로나19 대처 방안을 중심으로 트럼프에 맞섰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전염병 위기를 대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한국도 미국에서 배울 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세계화는 바이든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세계화에 확실한 타격을 줬다”면서도 “2008년 금융위기도 그랬지만 결국 세계화는 사라지지 않았고 부활했다”고 전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근본적으로 국제기구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가 재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고 코로나19에 따른 이동 제한이 금융 세계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줬다고 본다”며 “세계화 수준이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으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세계화가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중국의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가능한 한 미국과 함께해야 한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85년 영국 옥스퍼드대 모들린 칼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영국 제국주의를 비롯한 근대사를 가르쳤다. 이후 뉴욕대를 거쳐 하버드대 역사학과에서 경제 금융사를 강의했다. 2004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