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동십자각]시장을 보는 '스냅샷' 맞는 걸까

김보리 생활산업부 차장




2012년 말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은 영국 최대 이동통신 업체 보다폰의 그리스 자회사와 현지 3위 통신사 윈드헬라스 간 인수합병(M&A)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EU의 휴대폰 통신 발전을 위해 M&A를 승인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 두 기업이 결합할 경우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해 독점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 결국 EU 당국은 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해 M&A를 무산시켰다. 2000년대 중반까지 휴대폰시장에서 유럽 규격인 GSM 방식이 세계 표준으로 채택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10년께 한국·미국·중국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LTE 시장을 선점하면서 유럽 휴대폰 시장은 ‘과거 영광’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

EU가 휴대폰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을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 기사에서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통신사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했고 이에 따라 EU 통신 산업이 시장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며 핵심적 패인(敗因)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기업 M&A 심사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은 언제나 시장을 모션픽처·스냅샷 중 어느 것으로 볼지 여부다. 말 그대로 시장을 움직이는 모션픽처로 본다면 현재의 점유율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처럼 순간의 스냅샷으로 시장을 바라본다면 점유율은 움직일 수 없는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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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는 포기하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시장 점유율 30%의 요기요는 6개월 안에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공정위는 배달 앱 시장 1·2위인 배민과 요기요의 결합을 독과점으로 판단했다. 배달앱 시장을 스냅샷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배달 앱 시장 역시 쿠팡·위메프 같은 후발 주자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고 경기도의 공공 배달 앱 배달특급은 어느 정도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의 판단을 두고 국내 벤처 업계는 혁신적 기업의 성장이 공정위의 낡은 잣대로 멈출 수 있다고 우려한다. DH 본사 역시 배민의 배달 노하우와 로봇 관련 기술을 세계 곳곳에 접목할 것이라며 배민의 혁신성을 높이 샀을 정도다. 공정위의 이 같은 판단이 배민과 요기요뿐 아니라 다른 혁신 기업의 M&A 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스냅샷으로 봤을 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이를 모션픽처로 보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공정위의 판단이 2012년 당시 보다폰과 윈드헬라스의 패착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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