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양부모의 학대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만 16개월 정인이(입양 전 이름) 사건을 두고 사회적 공분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이동원 PD가 취재 후기를 전했다.
이 PD는 7일 전파를 탄 SBS 라디오 ‘이철희의 정치쇼’에 나와 “처음에는 이번 사건 취재를 안 하려고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이 PD는 “보통 하루에 제보 메일이 50여건 정도 들어오는데, 정인이 사건과 관련한 제보 메일은 200여건이 들어와 있었다”고 지난날을 떠올린 뒤 “의문을 품고 취재를 해보니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엄청나게 있었다”고 말했다.
이 PD는 이어 방송을 통해 정인이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이유를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너무나 많은 신체 부위에 학대 정황, 상처가 있었다”며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얼굴을 가린다고 하면 상처 부위를 보여줘야 할 텐데, 상처 부위들을 합하다 보니까 얼굴 대부분이 완성되더라”고 했다.
아울러 이 PD는 “아동학대 관련돼서 협회 쪽에 일하시는 소아과 선생님, 교수님들 자문을 구했는데 다 같이 하시는 말씀들이 이렇게까지 되면 정보를 공개하는 게 차라리 정인이나 사회를 위해서 낫지 않겠냐고 하시더라”며 “고심 끝에 공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 PD는 “정인이 양모가 홀트아동복지회 담당자에게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며 수시로 동영상을 보냈다고 한다”며 “들었던 에피소드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양모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본인이 나서서 입양 사실을 말하고 다닌 것”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이어서 “양모가 카페나 식당에 정인이를 데리고 갔을 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 스스로 ‘저 우리 아이 입양했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며 “공개입양이라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도 했다.
더불어 이 PD는 여러 차례에 걸친 학대 의심 신고에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 “당시 10여명의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들이 출동을 여러 차례 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라도 신경을 썼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 국회에서 입법조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현재도 충분히 매뉴얼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상황을 짚고 “저희가 아쉬운 건, 그 매뉴얼대로 진행만 됐으면 정인이는 지금 살아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 PD는 또 “정인이 사건 후속편에 대한 많은 요청이 있다”면서 “계속 취재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역할이 필요하다고 하면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2일 생후 16개월인 정인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숨진 사건을 다뤘다.
정인이는 생후 7개월쯤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불과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의 사망을 두고 양부모는 사고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인이의 사망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의 상태를 진료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방송에서 정인이의 배를 찍은 사진과 관련, “이 회색음영 이게 다 그냥 피다. 그리고 이게 다 골절”이라면서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라고 분노했다.
이어 남궁 전문의는 “사진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면서 “갈비뼈 하나가 두 번 이상 부러진 증거도 있다. 온 몸에서 나타나는 골절. 애들은 갈비뼈가 잘 안 부러진다. 16개월 아이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건 무조건 학대”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결정적 사인은 장기가 찢어진거다. 그걸 방치했다. 바로 오면 살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방송에서는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CCTV도 공개됐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정인이의 모습을 본 소아과 전문의는 “감정이 없어 보인다. 정서 박탈이 심해 무감정 상태일 때 저런 행동을 보인다”고 상황을 짚었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이 정인이를 안아주며 세워줬지만 정인이는 걷지를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인이의 볼록한 배를 본 배기수 교수는 “장이 터져서 장 밖으로 공기가 샌 거다. 통증 중 최고의 통증일 것”이라며 “애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굉장히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하는 MC 김상중은 “아이의 얼굴 공개를 두고 깊고 길게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아이의 표정이 그늘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기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상중은 이어 “같은 어른이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늦게 알아서, 정인아. 미안해”라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방송은 정인이가 입양된 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의 아동학대를 당한 징후들을 자세하게 전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아동학대 정황 의심 신고를 세 차례 받고도 양부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등의 내용도 방송에 담겼다.
이 부부는 정인이 입양 후 입양 가족 모임에 참석하며 입양아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해 EBS ‘어느 평범한 가족’에도 출연하며 “입양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며 입양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양부모의 모습과는 달리 정인이의 몸은 멍과 상처 투성이었으며 소아과 전문의와 어린이집 교사들은 아동학대를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정인의 양부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서울 목동 한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당시 정인이는 장기가 찢어져 복부 전체는 피로 가득 차 있었고, 골절 부위도 여럿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지난 11월 정인이의 양부모를 아동학대치사 및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와 방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양부는 아동학대 방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와 관련, 정인이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20일 답변 요건인 동의자 수 20만명을 넘긴 23만명으로 마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