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정부가 공공 재개발 후보지 8곳을 선정하고, 공공 재건축 사전 컨설팅 결과를 공개하면서다. 정부의 계획을 보면 공공 재개발 2만 가구, 공공 재건축 5만 가구 등 공공정비사업을 통해 7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공공정비사업을 정부가 발표 했을 때 시장에서는 가상의 허수라는 점을 지적했다. 공공임대 기부채납을 전제로 한 공공개발로는 민간의 참여를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이번 공공 정비사업 계획에서도 이 같은 점이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공공이 주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민간 부문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사업 진행 과정에서 빌라 가격만 들쑤실 여지도 다분하다. 사업은 장기화 되고 이 과정에서 빌라 값만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재개발… 알고 보니 소규모 단지>
정부와 서울시는 15일 공공 재개발 첫 시범 사업 후보지로 동작구 흑석 2, 영등포구 양평 13·14, 동대문구 용두 1-6과 신설 1, 관악구 봉천 13, 종로구 신문로 2-12, 강북구 강북 5구역 등 8곳을 선정했다. 지난해 실시한 공모에는 총 70곳이 신청했는데 도시재생지역 등 10곳을 제외하고 정비 계획안이 이미 마련돼 검토·심사가 쉬운 기존 정비구역 12곳을 대상으로 심사해 최종 8곳을 선정했다.
이들 8곳은 모두 역세권에 자리한 기존 정비구역인데 사업성 부족과 주민 갈등 등으로 사업이 10년 이상 정체됐었다. 영등포구 양평 13구역의 경우 지난 2010년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를 마쳤는데 미분양 우려 등으로 사업이 멈췄고 이후 주민 갈등이 발생해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강북구 강북 5구역 역시 상가 소유주들이 재개발에 반대해 주민 동의율이 50%를 넘지 못하는 등 사업이 장기간 표류 상태다.
이들 지역의 조합원 다수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노후 주거지 등 낙후된 지역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하지만 일부 지역은 주민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강북 5구역은 노후 주택과 상가가 혼재돼 있는데 상가 소유주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이들은 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가치보다 현재 임대료 수입이 더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한 상가 보유자는 “그간 상가 소유주들이 반대해 전체 동의율이 30~40%에 그쳤다”며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개발에 찬성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해당 구역의 신축 빌라 소유자들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다.
아울러 이번 공공 재개발 후보지를 보면 다 소규모다. 사업 후 건립 규모가 1,000가구를 넘는 것은 흑석 2구역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대한부동산학회장)는 “이번에 공개된 사업지를 보면 대부분 200~300가구의 소규모 단지나 부지 규모가 작은 재개발 구역”이라며 “흑석 2구역을 제외하면 정비 사업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곳”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공공 재개발이 정비 사업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사업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미 이들 공공 재개발 지역의 경우 빌라 등 노후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다는 방침이지만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의문시 된다. 실제로 흑석 2, 양평13, 양평14, 용두1-6, 신문로 2-12 등 이번 시범사업 후보지 일대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매물이 없거나 많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구역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이미 공공재개발 기대감이 나오면서 진작부터 매물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공공재개발 후보 신청을 해 놓은 신규 지역들도 빌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전세난으로 빌라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공공 발 공급 확대 정책을 수립할 때 이 부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 재건축, 아직도 시장은 싸늘>
이런 가운데 정부가 공공 재건축 사전 컨설팅 결과를 공개하며 서울 강남권 주요 단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나섰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용적률 상향, 재건축 분담금 감소 등 ‘당근’에도 불구하고 컨설팅에 참여한 강남권 단지조차 공공 재건축은 최우선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5년간 공공 재건축을 통해 5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정부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참여하는 공공정비통합지원센터는 15일 공공 재건축 사전 컨설팅에 참여한 7개 단지에 대한 사전 컨설팅 분석을 마치고 그 결과를 조합 등에 회신한다고 밝혔다. 신반포19차, 망우1구역, 신길13구역, 미성 건영, 강변 강서, 중곡 아파트 등 총 7개 단지가 신청했다. 대치 은마와 잠실주공 5단지 등은 참여를 철회했다.
사전 컨설팅 결과 7개 단지 모두 종 상향이 허용되는 것으로 평가됐다. 공공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공급 가능한 가구 수가 평균 58% 늘고 조합원 분담금은 평균 37% 감소하는 등 사업성 개선이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컨설팅에 참여하지 않은 강남권 단지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의 경우 ‘참여를 검토할 수준이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정복문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공공 재건축 반대 분위기가 여전히 크다”며 “민간 재건축 사업에 용적률만 높여줘도 주택 공급이 늘어날 텐데 굳이 공공으로만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말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의 한 조합원은 “가구 수를 늘리면 기존 소유주들의 대지 지분이 크게 줄어든다”며 “용적률이 높을수록 빼앗기는 것이 많은데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말했다. 사전 컨설팅에 참여한 단지들도 수백 가구 규모의 소형 위주여서 정부가 기대한 공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전 컨설팅에 강남권 단지 중 유일하게 참여한 서초구 신반포19차 또한 본 사업 참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강동효·진동영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