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위험이 있을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동학 개미’ 열풍에 동참해 은행주에 투자한 지인의 말이다. 예금이자보다 더 높은 배당 수익금을 주는데다 코스피 고공 행진 속에서도 은행주가 유독 소외받았기에 주가가 더 떨어질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름 신중히 투자를 결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그의 심기는 불편하다. 정치권이 주요 은행들에 이른바 ‘상생 강요 3법’ 중 하나인 ‘이익공유제’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지난해 유동성 확대로 ‘영끌’ ‘빚투’가 유행하고 그 덕에 은행이 좋은 실적을 냈으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계층의 대출이자를 유예·감면해주고 기금도 출연하라는 것이다. 지인은 “좋은 취지이기는 하지만 기업을 믿고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은 왜 전혀 고려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금융 당국이 코로나19 재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은행에 배당 자제를 권고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 결과 사상 최대의 실적 속에서도 은행주의 배당금은 예년 대비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결국 주주의 몫을 줄여 비축해둔 이익을 주주 외 다른 이들과 나누라는 것 아니냐"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인의 불만을 투자자의 탐욕 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 기업과 정부·정치권의 ‘주주 무시’ 경향은 사실 고질적인 문제다. 기업은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배당을 잘 늘리지 않고 정부와 정치권도 주주 가치를 손쉽게 양보 가능한 후 순위로 둔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야말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낳은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올 들어 코스피 3,000시대가 열렸고 모두가 선진국 대비 저평가 받아왔던 한국 증시의 도약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익공유제처럼 주주 가치를 뒷전으로 두는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주주가 기업의 미래에 투자하면 기업은 그 성과를 주주와 우선해 나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이 당연한 일로 자리 잡을 때 한국 증시는 비로소 '레벨 업'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