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세 대란… '벼락거지'가 된 심정"[관점]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6개월

입법폭주가 낳은 ‘미친’ 전세…‘정부의 실패’ 비용 세입자 전가

작년 하반기 서울 전셋값 11% 급등…'86년 통계 이후 최악

'제2의 헬리오시티 효과'는 없고 되레 두 배 차이 이중가격

로또 분양과 2년 실거주 의무…정책믹스 ·타이밍도 실패

지난해 7월 31일부터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6개월째 전세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소재의 한 부동산 중개 업소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서울경제DB


지난 2018년 12월 완공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가락 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것으로 9,150가구에 이르는 대규모 주택단지다. 연말 입주가 임박하면서 ‘급(急) 전세’ 폭탄이 쏟아졌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아파트 분양 잔금을 치르기 위해 급매물을 대거 쏟아냈기 때문이다. ‘헬리오시티 효과’는 강렬했다. 그해 여름 7억~8억 원 정도였던 전용 84㎡ 중형 전세 가격은 연말 입주가 다가오면서 6억 원대로 떨어졌다. 지하철역이 멀거나 층과 향이 나쁜 곳은 5억 원대 매물도 심심찮게 나왔다. 대규모 아파트 준공에 따른 역(逆) 전세 대란이었다. 이 바람에 2019년 1분기 서울 강남 3구의 전세 가격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사교육의 1번지 강남 지역에서 새 학기 때마다 반복돼온 전세난을 헬리오시티가 한 방에 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21년 1월. 이곳의 전세 시장은 완전히 딴판이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전용 84㎡ 전세가 1월 중 최고 13억 원에 거래됐다. 불과 2년 만에 2배가량 치솟았으니 가히 ‘미친' 전세라 할 만하다. 주목되는 것은 같은 평수의 아파트인데도 6억 원대 초·중반에 체결된 전세 계약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31일부터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전세금을 법정 상한선인 5%만 올린 재계약 물량이다. 신규 계약분과 재계약분의 가격 격차가 딱 2배다.

지난 2018년 12월 완공 직전의 헬리오시티. 당시 1만 가구에 육박하는 아파트 입주로 역전세 대란이 빚어졌다. /연합뉴스


문제는 2년 뒤다. 당장은 시세보다 싸게 재계약했지만 2년 뒤면 5% 룰이 적용되지 않아 4년 치 변동분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의 이중 가격 격차가 클수록 원래 살던 곳에서 밀려날 공산이 크다. 이달 초 헬리오시티 중형 아파트 전세를 재계약한 5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싼값에 계약을 갱신했지만 2년 뒤를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라며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전셋값이 이렇게 폭등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오는 31일로 시행 6개월을 맞는 새 주택임대차 제도는 전세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을 완전히 헝클어뜨렸다. 이중 가격 형성은 기본이고 새 아파트 준공에 따른 전세 약세 효과도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다. 전세의 반(半) 전세화 또는 월세 전환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전셋값은 새 임대차 제도 시행 이후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중 매월 0.5~2%(전년 대비 기준)씩 오르다 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8월 4.49% △9월 6.54% △10월 7.73% △11월 10.48% △12월 12.25% 등으로 상승 폭을 키웠다. 임대차 3법이 가시화한 7월부터 12월까지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8%로 KB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최고치다. 1년에서 2년 전세로 바뀐 1990년 첫 6개월인 1~6월 상승률 20.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시 물가가 8.6%올랐고 1990년대의 상고하저(상반기 급등·하반기 안정) 패턴 등을 감안하면 최근 반년 동안의 셋집살이 고통이 결코 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올 봄 결혼을 앞둔 30대 후반의 직장인 이 모 씨는 “전세 시세를 포털에서 검색하다 보면 ‘벼락거지’가 된 심정”이라고 울화통을 터뜨렸다. 신년 들어서도 전셋값은 3주째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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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전세 물건이 사라진 잠실 중개 업소의 매물 정보 게시판. 새 주택임대차 보호법 시행 이후 첫 이사철인 지난해 가을 전세 품귀 현상이 극심했다. /서울경제 DB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 정부와 여당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의 파괴력을 애써 무시했다. 시장에서 제기한 4년 치 전세금 일시 인상과 전세 매물 잠김 등의 부작용 우려를 귓등으로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완수에 매몰된 채 정책 효과에 대한 치밀한 검증과 분석 없이 입법 폭주로 치달았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세의 이중 가격 격차는 정부의 실패로 세입자에게 전가된 비용”이라며 “새 임대차법 시행은 정부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며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친 전셋값이 쉽게 잡힐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운 좋게 전세를 연장한 기존 세입자도 2년 뒤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서울 외곽으로 쫓겨갈 처지다. 부동산 전문가 중 어느 누구도 안정 시기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악재는 차고 넘친다. 일단 올해 서울에서 준공되는 아파트 물량 자체가 줄어든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 8,931가구로 5만 가구에 육박한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지난해 7월 30일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책 타이밍도 좋지 않다. 전세 보증금은 기본적으로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반영한다. 예컨대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집값은 전세 보증금과 같게 된다. 지금과 같은 집값 폭등기에 전세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정책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김현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전세 가격 동향은 매매보다 수급 상황에 더 민감한 특성이 있다”며 “가뜩이나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주택 가격 폭등기에 새 임대차법 시행은 ‘자살골’ 넣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올해부터 3기 신도시 사전 분양이 시작돼 전세 수요를 자극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2011년 전셋값이 급등한 배경에는 강남 보금자리 ‘로또 아파트’에 대한 대기 수요가 있었다”며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을 앞둔 시점의 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전세 시장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세 공급을 위축시키고 수요를 늘리는 부동산 제도는 수두룩하다. 현행 투기 억제책 중 상당수가 전셋값 안정과는 상극이다. 전세 난민을 부추기는 분양가상한제와 가점 위주의 청약 제도를 비롯해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양도소득세 비과세 2년 실거주 요건 등이 해당한다. 다음 달 19일이면 분양가상한제의 2년 실거주 의무도 발생한다. 이는 제2의 헬리오시티 효과가 약화되거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 여당의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해 8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제도를 과도기의 ‘마찰적 현상(홍남기 경제부총리)’으로 치부하기에는 세입자의 피해와 시장의 혼란이 너무 크다. 임대인의 양보와 희생으로 모든 임차인이 덕을 본다면 모를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웃돈을 줘야 한다는 것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몸소 보여줬고 임대·임차인 간 재계약 갈등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김현아 위원은 “여당은 선한 정책이라고 포장하지만 지금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세 대란, 미친 전세에 빠져든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전셋값이 폭등한 2011년 전월세상한제의 입법 발의가 홍수를 이룰 당시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임차인은 상대적 약자, 임대인은 강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임대료 규제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중략) 전월세상한제는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주거 복지 정책이 아니며 임대료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중략) 단기적으로 임대료가 한꺼번에 오르고 장기적으로는 임대주택의 공급이 줄어 임대료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규제가 보호하려는 가구들 중 일부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부동산 경제학의 대가인 김 교수의 10년 전 우려는 지금 정확히 현실화하고 있다. 그는 “과학이어야 할 정책이 이념의 영역이 됐다”고 개탄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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