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년 1월 29일 극단 ‘체임벌린 경의 사람들’이 런던 외곽 커튼 극장에서 ‘베로나의 연인들’을 선보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당시 31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기(日記)로 유명한 새뮤얼 피프스는 ‘최악’이라고 썼다. 시인 겸 비평가 존 드라이든은 ‘극 중에 셰익스피어 자신이 들어 있다’ 고 추켜세웠다. 거의 혼자 힘으로 옥스퍼드 사전을 편찬한 새뮤얼 존슨은 ‘최고 작품’이라는 평가를 매겼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흥행 가도를 달렸다. 셰익스피어는 극장을 지을 만큼 큰돈을 벌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름을 건 작품은 장르를 막론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오페라만 31편, 영화도 수십 편이 나왔다. 소극단의 연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디선가 공연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토록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극적이지만 ‘불꽃 같은 사랑’ 때문이 아닐까.
주목할 대목은 셰익스피어의 창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시인 아서 브룩이 이탈리아 이야기를 운문체로 묶은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역사(1562년)’를 보고 줄거리를 짰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에 앞서 1531년 루이지 다 포르토가 ‘줄리에타 에 로메오’를 출간했다. 베로나라는 지명과 몬터규와 캐풀렛이라는 가문, 주인공은 물론 사랑의 메신저인 로렌스 신부, 훼방꾼 티볼트의 이름까지 처음 나왔다.
정작 원전은 따로 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전개와 결말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거의 같다. 작품의 무대는 기원전 10세기 바빌로니아. 다시 말해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변되는 ‘자유연애’란 유럽에서 인성이 회복되고 문화가 융성했다는 16~17세기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인간 본성이었다는 얘기다.
주가나 경기를 나타내는 경제 용어 ‘비이성적 과열’로도 이들의 얘기를 음미할 수 있다. 첫눈에 반한 청소년(줄리엣의 나이 13세)들이 몰래 결혼하고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닷새. 비이성적 과열이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보다 더 지독하고 구조적인 과열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가문의 원한이야말로 비이성적이고 상호 파괴적인 과열 아닌가. 순수한 10대의 인지 조화가 적대감에 빠진 어른들의 인지 부조화에 막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저 멀리 바빌로니아와 유럽을 떠올릴 것도 없다. 이 땅에서 기성세대의 인지 부조화와 비이성적 과열로 청년들이 피해 보는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알립니다] ‘오늘의 경제소사'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권홍우 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