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29일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ESG) 문제 기업에 사외이사 추천을 추진하는 명분은 책임 투자다. 전 세계적으로도 ESG 투자는 주요 연기금이 받아들여 투자에 반영하는 원칙으로 그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투자 비전문가 중심으로, 그간의 논의조차 무시한 채 돌발적으로 안건을 올려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국민의 노후 자산을 다루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특정 시민사회와 재계 간 힘겨루기의 장이 되고 최근에는 특정 시민 단체가 전체 논의를 좌우하는 형국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는 지난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2019년 12월 이를 실제 적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날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이찬진 위원이 올린 안건은 기존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내용이다. 그마저도 회의 이틀 전에 불쑥 안건으로 올리면서 사전 논의 기구인 실무평가위원회도 거치지 않았다. 2년 반 동안 이어진 논의를 무시한 것이면서 역으로 그동안의 논의가 참가자조차 따르지 않을 정도로 부실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위원이 속한 참여연대는 그동안 삼성물산 등 7개 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논란, 포스코는 환경오염과 직업성 암 유발,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비판했다. 라임 등 사모펀드 사기 사건에 연루된 우리·신한·KB·하나금융지주는 경영 부실 비판을 받았다.
이 위원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2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면서 “기금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기업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거론된 7개 기업 중 어떤 기업에 어떤 사외이사를 추천할지는 전문가 그룹인 수탁자책임위원회에 맡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이경상 위원은 “1년 넘게 논의한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내용을 갑자기 제안하는 졸속 처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해당 기업들은 ESG 등급이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기준인 C등급 이상으로 우수한 편이고 그 밖에 문제 제기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기금운용위는 투자 전문가 그룹뿐 아니라 시민사회, 가입자 단체, 재계 등 다양한 분야를 대리한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만을 전담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본업은 따로 있고 한 달에 한 번꼴로 기금운용위에만 참여하는 비전문가에 가깝다. 또한 안건 선정과 회의 진행은 보건복지부가 맡고 있어 실제 투자를 전담하는 전문가 집단인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안건 선정 여부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 투자하는 조직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원칙을 결정하는 조직이 별개로 돌아가고 그 과정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결합하면서 중구난방으로 논의가 이어져온 게 국민연금기금운용위다. ESG 투자 원칙을 지키되 장기적 투자 수익을 전제로 투자와 경영 전문가가 모여 원칙을 결정하는 해외 연기금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 세계 연기금 중 수익률 1위를 유지해온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의 김수이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연기금이 주주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반드시 독립적인 조직이 투자 수익을 전제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