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한일 해저터널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그날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한일 간에 해저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북한 때문에 실감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공론화의 운을 뗐다. 이처럼 18년 전에는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총리가 참석하고 해저터널 구상을 한국이 말할 만큼 한일 관계가 원만했다.



한일 해저터널 구상은 출발 때부터 참혹했다. 1917년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연구 자료 ‘철도용 쓰시마 해저터널 건설’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부산-쓰시마-시모노세키 등을 연결하는 침략의 방편이었을 뿐이다. 1935년 일제의 대동아 공영권 구상 아래 수립된 ‘탄환열차 계획’에는 도쿄-시모노세키-쓰시마-부산을 논스톱으로 연결하는 방안이 들어 있었다. 이후 일본 철도성은 1938년 ‘조선해협터널 및 대동아 종단철도 구상’ 용역을 발주해 2년 뒤 구체적 플랜을 내놓았으나 일제 패망으로 백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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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83년 일본에서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되는 등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해저터널 공법으로는 바닷속 지층을 뚫는 방법과 콘크리트로 만든 케이슨(Caisson)을 해저에 늘어놓는 ‘해중 터널’ 등이 거론됐다. 노선은 규슈-쓰시마-부산 경로였다. 한일 정부 사이에서는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이 해저터널 건설을 제의하고 가이후 도시키 일본 총리가 찬성의 뜻을 밝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9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일 터널이 건설되면 홋카이도에서 유럽까지 연결되니 미래의 꿈으로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부산을 찾아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꺼낸 가덕도신공항을 받고 여기에 해저터널을 더한 셈이다. 해저터널 건설의 득실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들이 있지만 민주당은 다짜고짜로 “친일적 계획”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여당의 10조 원가량 드는 가덕도 선심에, 야당은 100조 원쯤 드는 해저터널 선심이라니. 정치권의 포퓰리즘 노름판에 국민만 멍들게 생겼다.

/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hnsj@sedaily.com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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