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가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오르자 외신들은 ‘바보 같다’며 비판했다. 미국인이 감독하고 미국에서 제작된 이 영화가 한국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외국어영화 후보로 경쟁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3일(현지 시간)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렸다.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감독 리 아이작 정(정이삭)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대 미 아칸소주(州)로 이주해 농장을 일구며 정착하는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미국의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해 유명해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과 한예리, 윤여정 등이 출연한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타임스(NYT)는 “이번에는 HFPA가 바보같이 보이게 됐다”고 비난했다. NYT는 “리 아이작 정은 미국인 감독이고, 이 영화는 미국에서 촬영됐으며, 미국 회사가 자금을 지원했고,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민자 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외국어영화 후보로 경쟁해야만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최고의 상(작품상)을 노려볼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도 “골든글로브가 후보작 명단에 영화의 출신 국가를 써놓으면서 상황은 훨씬 더 희극적으로 됐다”며 “‘미나리’ 밑에는 ‘미국’이라고 나온다”고 비꼬았다. 인사이더는 이 때문에 "영화 팬들이 혼란스러운 광분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NYT는 또 “‘미나리’ 출연진은 배우 후보 지명도 받을 만했는데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연예전문지 엔터테인먼트도 “더 큰 충격은 여우조연상 부문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여겨졌던 윤여정이 조디 포스터의 깜짝 지명을 위해 빠졌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HFPA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한 이유는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미나리’는 영화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로 돼 있어서 이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HFPA는 또 외국어영화는 다른 부문 후보작에는 모두 들어갈 수 있지만 작품상(드라마 및 뮤지컬·코미디 부문) 후보작에는 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미나리'가 외국어영화로 분류됐다는 보도가 앞서 나오자 미국에서는 곧장 인종 차별 논란이 일었다. 미국 영화사인 브래드 피트의 ‘플랜B’가 제작하고, 미국인 감독이 연출하면서 미국인 배우가 출연한 영화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유명 작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타인 응우옌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언어가 ‘외국적’의 기준이 된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백인에게 사실일 수 있지만, 아시아계는 영어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외국인으로 인식되는 듯하다”며 이 영화가 ‘미국적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은 이달 28일 NBC 방송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것으로,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