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립을 위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검토 중이며 유럽연합(EU)도 독일의 주도 아래 500억 유로(약 67조 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 3위의 차량용 반도체 회사인 일본의 르네사스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인 다이얼로그와 49억 유로(약 7조 원)의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 중국 SMIC는 올해 주력 제품 생산 확충에 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각국의 분주한 움직임은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국 중심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올인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외부 의존도를 낮춰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공장 문을 닫거나 감산에 들어간 것도 이런 추세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는 미국·독일·일본 등으로부터 물량을 먼저 공급해달라는 외교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특정 기업의 생산 동향에 전 세계가 동요하는 사태야말로 반도체라는 핵심 산업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런데도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한민국을 첨단산업의 세계 공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정부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 법안들만 쏟아내고 있다. 당장 2월 임시국회에서도 소송 남발을 부추길 집단소송법 및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밀어붙일 태세다. 게다가 여당은 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영업손실보상법 등 ‘상생 강요 3법’을 내세워 기업 이익을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있다. 세계가 반도체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는데 기업 발목이나 잡으려 한다면 백전백패다. 이제는 반시장 정책을 접고 전략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 대책을 내놓을 때다.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