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법관 탄핵 보조기관 된 대법원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적폐 청산 내세운 '판사 탄핵 정치'

대법원장 가세 사법 독립 흔들어

'정치하는 법관'은 법치의 적일뿐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관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겨졌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관련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개입한 것이 주요 탄핵 사유다.



헌법상 모든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해야 하기에 상급자 법관이라도 일선 법관의 재판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난 2009년 광우병 사태 관련 촛불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재판을 신속히 처리하고 집회 참가자의 보석을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압력을 넣은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한 전례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의 경우와는 다른 측면이 많다. 2009년에는 일선 판사들에게 e메일과 전화로 재판의 방식에 관해 직접적 압력을 넣은 것인 데 반해 이번 사례는 담당 재판관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하는 내용을 판시해줄 것”과 “국제 언론의 관심을 고려해줄 것”을 조언하는 정도의 개입이다. 또 헌법상 탄핵의 조건은 “직무상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인데 이번 경우에는 이미 1심 법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위헌적이기는 하나 불법은 아니라며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1심 재판부가 ‘위헌적’이라는 표현을 남겼고 1심 판결은 최종 판정이 아닌 만큼 탄핵의 조건인 불법성에 대한 최종적 유권 해석은 아니라는 핑곗거리는 있다.

관련기사



그래도 집권 여당이라면 진정한 탄핵의 사유가 어느 정도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1985년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 투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들을 줄줄이 지방으로 좌천시킨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해 당시 야당인 신한민주당이 탄핵 소추를 발의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이 진정한 탄핵이다.

지금 국민이 걱정스럽게 목도하고 있는 것은 탄핵을 추진하는 세력이 저지르고 있는 헌정 체제의 아노미 현상이다. 탄핵은 ‘공직에서 파면함에 그치기’에 임기 만료를 불과 20여 일 앞둔 임 판사를 굳이 탄핵 소추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 등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제 마지막 기회인 임 판사마저 1심에서 무죄가 나자 정치적 탄핵을 해서라도 그동안 벌여온 사법 적폐 청산의 핑곗거리를 마련하려 하는 것이다. 또 그래야 정권 말기 권력형 비리에 대한 법원의 칼날을 사법 적폐 청산을 내세워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적폐 몰이에 ‘협조’ 않는 판사들은 끝까지 불명예 퇴진시킬 수 있다는 협박이 깔려 있다. 이런 식으로 의회 정치가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 것은 삼권분립 질서를 대놓고 흔들겠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더 심각한 점은 대법원장 자신이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행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폐 판사’를 한직으로 돌려 사직시키는 것도 모자라 사직하려는 법관을 못 나가게 막고 집권 여당의 정치적 탄핵의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게 사법부 수장의 역할이라는 말인가. 임 판사가 녹음까지 하며 대법원장에게 청원한 질병 사직을 막아선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 거짓말까지 들통나면서 드러났다. 헌법상의 공무담임권에 포함된 사직의 권리를 법의 수호자 자신이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반인권적이기도 하다. 법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법관은 법치의 적일 뿐이다. 하물며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대법원장이라는 사람이 그러할진대 국민들은 이제 일개 법관의 탄핵 결정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대법원이 도대체 뭐에 쓰는 기관인지를 묻고 있다.

/여론독자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