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다시 한 번 강도 높게 지적했다. 현재 개정안은 당사자 동의 없이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의 내부 자금 거래 정보를 수집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명백한 ‘빅브러더법’이라는 것이다. 중국조차 내부 거래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는 만큼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17일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 법무법인 2곳에 해당 사안에 대한 법률 검토를 의뢰한 결과 명백한 빅브러더법이라고 판단했다”며 “관련 조항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빅테크 기업의 자금 거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전자지급거래 청산업’을 신설하고 청산 기관을 금융결제원으로 검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결제원 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한은은 해당 법안이 한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며 강력히 반발해왔다.
이날 한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금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금융위는 사실상 금융결제원을 통해 네이버와 같은 빅테크 기업의 모든 거래 정보를 별다른 제한 없이 수집하게 된다. 빅테크 업체들은 고객의 모든 거래 정보를 금융결제원에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수익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여받는다. 심지어 해당 법안은 빅테크 업체의 정보 제공에 대해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법률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
한은은 “금융위는 빅테크 업체의 거래 정보 수집 이유로 이용자 보호와 거래 투명화를 들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가정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가정에 CCTV를 설치해놓고 지켜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은은 중국인민은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중국 정부도 빅테크 업체의 내부 거래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으로 확인했다.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을 금융위가 추진하는 셈이다. 한은은 지급 결제 시스템이 경제주체의 채권 채무 관계를 해소해 원활한 경제활동을 뒷받침해주는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데 이를 소비자 감시에 동원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번 전금법 개정안은 디지털 금융의 혁신과 안정을 위한 법 제도의 정비가 목적”이라며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 개인 정보 수집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빅브러더’ 관련 조항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돼야 한다”고 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