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어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주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상법 등이 개정되며 주총 부담은 커진 데 반해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이어지며 손발은 묶인 형국이다. 온라인 주주총회가 불법인 상황에서 지난해 ‘동학 개미’ 열풍으로 대폭 늘어난 소액주주들을 안전하게 수용할 주총 장소를 마련하는 일부터가 관건이다.
18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 헬프 데스크를 운영하며 기업 실무자들의 상담이 많았던 이슈를 종합해 발표했다. 상장협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안전하게 무사히 주주총회를 진행하는 일 자체다. 우선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져 결산과 외부감사 등이 지연돼 재무제표, 감사 보고서, 사업 보고서 등의 작성과 기한 내 제출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많다. 여기에 상법이 개정되며 올해부터는 주주들의 내실 있는 의결권 행사를 위해 주총 전에 사업 보고서와 감사 보고서를 주주에게 제공하는 일이 의무화됐다. 법 개정 전에는 사업 보고서를 주총 이후인 3월 말까지 제출해도 됐지만 올해부터는 주총 소집 통지를 알리며 사업 보고서를 첨부하거나 늦어도 주총 일주일 전까지는 홈페이지에 관련 정보를 게재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사업 보고서 제출 기한은 대폭 앞당겨졌지만 코로나19로 결산·감사 절차는 지연되는 답답한 상황인 셈이다. 특히 해외 현지 종속 회사가 많은 기업들의 경우 해외 출장길이 막혀 실사가 어려운데다 공장·사업장의 셧다운 등으로 결산 자체가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주주총회 의결정족수를 충족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특히 지난해 개인투자자들이 급격히 늘며 안전하게 주주총회를 치를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상장협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셀트리온의 주주총회에는 4,00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올해도 이런 대규모 주총을 진행할 경우 아무리 방역을 잘한다고 해도 회사·주주 모두에게 부담인 상황”이라며 “현대차나 기아차처럼 본사에서 주총을 여는 기업의 경우 주총을 진행하다 자칫 본사가 폐쇄될 수도 있으니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대부분 대기업은 주총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방식을 통해 주주 권리 강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행 상법상 비대면 방식의 온라인 주주총회로 정기주총을 갈음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 참석과 의사진행 발언, 의결권 행사 등과 관련한 법이 갖춰져 있지 않아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처럼 정기 주총을 열고 온라인 중계를 할 경우 주주들이 주총을 시청하고 질문도 할 수는 있지만 주총 안건에 대해 투표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사전에 전자 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대리 행사를 신청해야 한다. 상장협 측은 “개인주주들이 급증한 상황에서 내실 있는 주주총회를 열자며 상법까지 바꿨는데 정작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기업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대면 총회 등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 주총부터는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취지로 관련 법이 개정돼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의무화 등이 새로 도입됐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감사위원을 뽑을 때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다시 선출했지만 올해부터는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무조건 이사와 별도로 분리 선출해야 한다. 이때 의결권은 사외이사를 겸하는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게 각각 3%씩 부여하고 분리 감사위원 선출 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 3%로 제한하는 ‘3%룰’이 적용된다. 따라서 올해 감사위원 재선임을 앞둔 기업들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긴장하는 분위기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