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국정농담] 文정부, 중국 눈치에 美 '반중연대' 홀로 이탈하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58개국 '中 외국인 구금 규탄 선언'에 韓 빠져

같은 날, 왕이는 정의용에 "진영 가르지 말라"

한중 외교 장관 "시진핑 방한 의지, 조속 추진"

美日은 바이든 취임 첫 '쿼드' 회의로 中 압박

방위비 협상도 조속 타결...한미·미일동맹 격차

한미 SMA 합의해도 커지는 '反中' 요구는 부담

지난해 11월 외교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지난해 11월 외교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민주진영의 대(對)중국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의 외국인 인질 반대 선언부터 다국적 안보 협의체 ‘쿼드(Quad)’ 회의까지 반중(反中) 연대 결속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에 묘하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보이지 않는 긴장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의 대북관계 역할, 한중 간 경제적 유대관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등을 고려해 최대한 시간을 벌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권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전략적 모호성’ ‘줄타기 외교’ 기조를 견지하고는 있는 셈이다. 한미 양국 모두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미국은 ‘중국과 전체주의 진영 견제’, 한국은 ‘북미 대화 재개를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으로 동맹의 목적이 상당히 다르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중시 기조를 감안할 때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한국은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 순간을 대비해 한국이 ‘민주’ ‘자유’ ‘인권’ 등 가치를 앞세운 국익 중심의 외교로 전략을 미리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청와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中겨냥 58개국 ‘외국인 구금 규탄 선언’에 韓 빠져

15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캐나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정치적 목적으로 외국 국적자를 구금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에 한국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성명에 동참한 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 등 민주진영 선진국들을 비롯한 58개국이었다. 가나·베냉·통가·투발루 등 개발도상국 및 소국도 있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성명에 지지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의적 구금 반대 공동 선언’은 명목상 캐나다가 주도하기는 했지만 국제적 연대를 통해 반중 전선을 형성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과도 연계된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2018년 중국 정부가 캐나다 외교관 출신 마이클 코브리그와 대북 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를 구금하고 간첩 혐의로 기소한 것이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회사 부회장인 멍완저우를 캐나다가 체포한 지 며칠 뒤 발생한 일이었다. 캐나다 정부 관계자가 중국·러시아·북한·이란 등을 성명의 대상으로 콕 집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해당 선언에 빠진 점은 외교가에 여러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국 국적 선박과 선장이 아직 이란에 나포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동참에 주저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선원들은 이미 모두 석방된데다 선언의 주요 대상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박도 제기됐다.

우리 정부가 또다시 북한과 중국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조성한 국제적 반중 전선에 한국이 이탈하는 듯한 메시지를 준 게 아니냐는 우려가 동반됐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도 불참해 국제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북한은 현재 한국인 6명을 억류하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선언에 대해 인지해왔다”며 동참 요청을 받았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국제사회의 논의 동향을 주시해나갈 예정”이라고만 언급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날, 왕이는 정의용에 “편가르지 마라…시진핑 방한 의지”

우연찮게도 같은 날인 16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취임 인사를 겸한 전화 통화를 나눴다. 외교부에 따르면 두 장관은 양국 정상·고위급간 교류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한중 관계의 심화·발전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왕 부장은 특히 시 주석의 방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에 두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추어지는대로 시 주석 방한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왕 부장은 정 장관을 중국에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기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할 시점을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 사이인 4~6월로 점치고 있다.

다음 날인 17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두 장관 간 대화 중 한층 더 민감한 내용을 전했다. 왕 부장은 정 장관에게 “중국은 포용적인 역내 협력과 개방을 견지할 것”이라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진영을 가르는데 반대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우리 외교부가 밝힌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사실어었다. 우리 정부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동맹부터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을 경계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의 방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정 장관이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강화하자는 언급을 했다고만 소개했다. 왕 부장은 또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는 “한반도 문제는 중한(한중) 양국의 중요한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며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역할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에 미국 등 외부 세력의 개입을 견제하는 듯한 말이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UPI=연합뉴스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UPI=연합뉴스


美日은 바이든 취임 첫 ‘쿼드’ 회의로 중국 압박 속도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여전히 줄타기 외교를 하는 가운데 미국, 일본, 인도, 호주는 18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안보협의체인 쿼드 외교장관 회담을 열었다. 쿼드는 4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점증하는 정치적·상업적·군사적 활동에 대항해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결성된 협의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첫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고 두 번째 회의는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개최됐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등 4개국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또 쿼드 참여국의 장관급 회담을 최소 연 1회 개최한다는 방침을 확인하며 중국 견제를 위한 공조 의지를 다졌다. 항행의 자유와 영토의 보전을 포함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증진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연안인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이 국제사회 역할 강화를 표방한 ‘아세안 중심성’에 대해서도 상호 지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쿼드 정상회담 추진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기조를 대부분 부정하는 가운데서도 쿼드만큼은 유지·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상태다. 실제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한 세미나에서 쿼드를 두고 “인도·태평양에서 실질적 미국 정책을 발전시킬 근본적인 토대”라며 “우리는 정말로 그 형식과 메커니즘을 넘겨받아 더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8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취임 이후 첫 통화를 나누며 쿼드 강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EPA=연합뉴스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EPA=연합뉴스


중국 문제에…한미-미일동맹 격차 벌어질 조짐

외교가에서는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 들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결속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러시아-북한으로 이어지는 전체주의 연대에 대항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두 축이 궤를 달리 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일본의 경우 미국과 마치 한 몸처럼 적극적으로 반중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중국과 북한을 의식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일본의 경우 지난 17일 미일 방위비 특별협정을 1년 더 연장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일본 정부의 주일미군 분담금을 지난해 수준인 2,000억엔(약 2조1,000억원) 정도로 유지하는 안이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의 첫 통화 시점(1월27일)이 문재인 대통령(2월4일)보다 일주일이나 더 빨랐던 데 이어 군사 협력까지 미일동맹이 한미동맹보다 속도를 더 낸 것이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미일동맹은 어느 때보다 확고하고 필수적”이라며 “우리는 상호 작전 운용성을 개선하고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속 훈련하고 연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한미동맹에는 중국 문제를 두고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지난해 미국이 현 쿼드에 한국과 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추가한 ‘쿼드 플러스’ 구상을 언급하자 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정의용 장관도 지난 9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쿼드 참여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미중 갈등 국면에 대한 대응을 묻는 질문에는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진행한 업무 보고에서도 한미 동맹 강화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과 연계해 언급하면서 “중국과는 시 주석 방한 등 고위급 교류를 추진하고 양국 교류·협력을 전면 복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방위비 협상 타결 임박했지만...'反中' 동참 압박 더 커질 듯

다만 한미 관계 가운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난항을 겪었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 협상 만큼은 조만간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그 시점이 이달 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상태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11일(현지 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몇 주 내로 타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세부적으로는 기존보다 13% 더 인상하는 액수로 다년 계약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3월 한미가 잠정 합의한 조건과 유사한 수준이다. 당시 양국은 2020년 분담금을 2019년(1조389억원)보다 13%가량 인상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50% 이상 증액 원칙을 고수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미는 지난 5일 SMA 체결을 위한 8차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정의용 장관과 블링컨 장관도 12일 통화를 하고 방위비 협상 신속 타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2013년과 2014~2018년 두 차례에 걸쳐 5년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

이는 사실 동맹국과의 관계 복원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흐름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방위비 문제가 조속히 마무리되면 북핵 등 다른 현안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문제를 선결해 주는 대가로 한국의 대중국 압박 동참을 더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판단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돼 선택지를 받아 들어야 할 상황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는 이유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상반기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하는 만큼 중국 측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쿼드 확대 방안에도 소극적으로 반응할 것 같아 아쉽다”고 진단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는 최대 핵심 국가"라며 "정상회담도 한국보다 한두 달은 더 빨리 성사시킬 것으로 보여 한미·미일 동맹 간 엇박자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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