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정치권의 핵심 현안은 과연 공화당이 당 내부의 극단주의자들을 제대로 솎아낼 수 있느냐다. 지금 공화당에는 지난 2020년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하거나 폭력적인 극단주의 단체들과 연결된 사람들 혹은 과거 반유대주의를 선동했거나 극우 집단인 큐어넌의 음모론을 신봉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주 의회의 사정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과연 공화당은 그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미국 민주주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보수주의 정당들과 민주주의의 탄생’에서 20세기 초, 영국이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한 반면 독일이 파시즘으로 방향을 튼 핵심 이유를 짚어냈다. 그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수년 전, 영국의 보수당은 당 내부의 반민주주의들 특히 북아일랜드 극렬주의자들의 위협에 직면했다. 그러나 강력한 정당이자 위계질서가 뚜렷한 토리당은 당내 분파들을 단속하는 데 성공하면서 영국의 민주주의를 안정시켰다.
독일의 경우는 영국과 대적이다. 주류 보수당인 DNVP는 약체인데다 무질서했고 장외 그룹들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인물이 루퍼트 머독의 초기 현신이라고 할 만한 언론 재벌 알프레트 후겐베르크였다. 그는 자신이 세운 미디어 제국과 이를 통해 쌓은 인맥을 이용해 당을 장악한 데 이어 DNVP를 한층 우측으로 몰아갔다. 당은 내분으로 기진맥진했고 유권자들은 나치당을 비롯한 극우 대체 정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필자는 극단으로 치우친 공화당과 나치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정당이 내부의 극단주의자들을 단속하지 못할 때 해당 정당과 민주주의 모두에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메리칸엔터프라이즈인스티튜트의 최근 설문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들의 56%는 “전통적인 미국적 삶의 방식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며 “이를 지키기 위해 물리적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보였다. 응답자의 39%는 “만약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들이 미국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필요할 경우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일을 해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와 양립이 불가능한 견해다.
데이비드 프럼이 쓴 ‘Dead Right’에 따르면 공화당은 이미 1980년대에 그들이 오랫동안 감싸 안았던 세력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다.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과 린든 B 존슨의 ‘위대한 사회’ 정책을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이 이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지금까지 거리낌 없이 유권자들에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은 불만에 가득 찬 폭도들에 의해 장악됐다. 1990년대 중반과 2013년에 각각 단행됐던 정부 폐쇄를 생각해보라. 전자는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그리치 의원(공화·조지아)에 의해 계획되고 지시됐다. 반면 후자는 공화당 내 극우 집단인 티 파티의 요구로 이뤄졌다. 당시 마지못해 티 파티의 요구를 받아들였던 존 베이너(공화·오하이오)는 결국 극렬분자들에 의해 하원의장직에서 축출됐다.
2016년 공화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 위계질서가 무너지면서 당 지도부는 힘을 상실했다. 게다가 테드 크루즈(텍사스)와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등 유망주들은 트럼프의 지지 기반에 등을 돌리기는커녕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공화당이 당내 극렬분자들을 다잡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공화당의 선거 패배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더러 나온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백악관을 내주기는 했지만 선거에 나선 다른 공화당 후보들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근소한 차이로 상하 양원 모두를 민주당에 내주기는 했으나 하원 의석은 오히려 늘어났고 상원은 50 대 50 동률을 기록했다. 유권자 압박과 게리맨더링의 도움을 받았다 치더라도 공화당은 각 주에서 실시된 주 하원 선거에서 선전했다.
유럽의 정당들은 보다 튼튼한 내부 구조 덕에 극렬 세력들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점차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건 미디어는 이념의 결을 따라 갈가리 찢어졌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목소리를 잠재우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수문장이 점점 줄어드는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같은 사실을 제대로 의식조차 못 한 채 새롭고 위험한 정당 정치의 실험에 돌입했다.
/여론독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