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이 7년여 만에 그룹 경영 전면에 복귀하지만 계열사 대표이사를 직접 맡지는 않기로 했다. 김 회장은 지난 201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한화 등 주요 계열사 7곳의 대표이사였다. 이보다 앞서 2007년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에서 물러났을 때도 1년 만에 곧바로 복귀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예전처럼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예상과 달리 김 회장이 ㈜한화·한화솔루션(009830)·한화건설 등 3개 계열사에만, 그것도 이사회 멤버가 아닌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개별 회사의 경영 현안보다는 미래 먹거리를 챙기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계열사들의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관여하기보다는 그룹 전반에 걸친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과 해외 네트워크를 통한 글로벌 사업 지원 등의 역할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 회장은 폭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방위 산업을 영위하면서 다져온 미국 정·재계 네트워크가 공고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취임 때도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추천으로 취임식에 참석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항공우주와 그린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 등 한화가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사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 내 친환경 정책에 힘이 실리고 있는 만큼 태양광·수소 사업을 하는 한화로서는 사업 확장의 기회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래 모빌리티, 항공우주, 그린 수소 에너지, 디지털 금융 솔루션 등 신규 사업에서도 세계를 상대로 미래 성장 기회를 선점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김 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한화건설도 이라크 비스마야에 대규모 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12조 4,000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 김 회장이 직접 비스마야 건설 현장을 찾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수주 때도 오너인 김 회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동관·동원·동선 등 세 아들이 주요 계열사 임원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김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평가된다. 장남인 김동관 사장은 한화솔루션 전략 부문 대표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태양광·수소 등 미래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이끌고 있다. ㈜한화를 주축으로 하는 항공우주 태스크포스(TF)도 이끌고 있고 조만간 관련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등기 임원에도 선임된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전무도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를 맡아 금융 계열사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3남인 김동선 상무보는 한화건설에서 근무하다 국내 사모펀드(PEF)를 거쳐 최근 한화에너지 글로벌전략 담당으로 계열사 경영에 복귀했다.
한화 측은 “계열사들이 이사회 중심의 독립 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앞으로도 회사별 사업 특성에 맞춰 자율 책임 경영 시스템을 지속 발전시킨다는 점을 고려해 김 회장이 등기 임원을 맡지 않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