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 가족과 면회 한 번 못 했는데 집단면역이 형성돼 마음껏 자녀들과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26일 오전 8시 38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앞두고 서울시 도봉구 노아재활요양원에서 만난 김정옥(57) 노아재활요양원장은 다소 긴장된 듯하면서도 고무된 모습이었다. 8시 59분께 접종실에 입장한 김 원장은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들로부터 관련 내용을 안내받은 후 신분증을 제출하고 알레르기 반응 여부 등의 내용이 담긴 예진표를 작성했다. 꼼꼼한 예진표 작성은 접종자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어 중요하다.
예진을 맡은 박선희 도봉구보건소 의사는 “일단 안전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접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가장 신경 쓰고 있는데 꼼꼼히 예진하겠다”고 말했다.
접종은 9시 2분께 시작됐다. 실제 접종에 걸리는 시간은 7~8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접종자가 접종 후 접종실 옆에 마련된 이상 반응 관찰실에서 경과를 지켜본 후 자리를 뜰 때까지 약 30분이 소요됐다. 김 원장은 접종 직후 다소 울렁거림을 호소했으나 혈압 등을 체크했을 때 이상 반응은 없었다. 그는 “접종 후 15분 정도 이상 반응을 관찰하며 기다리니 울렁거림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의료진은 김 원장에게 8주 후인 오는 4월 23일 2차 접종을 위해 내원하라고 안내했다. 접종자는 귀가 후 3시간가량 관찰해야 하며 3일 후에도 열이 있거나 증상이 발생하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날 대장정에 올랐다.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03일 만이다. 소중했던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11월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부터 전국 1,915곳의 보건소·요양병원 등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진행됐다. 접종 대상자는 요양병원·시설의 만 65세 미만 입원 환자, 입소자, 종사자 등이다. 지난 25일 기준 접종에 동의한 사람은 대상자의 93.7%인 28만 9,480명이다.
서울경제 취재진이 이날 현장에서 만난 요양 관련 시설 종사자들은 “하루빨리 집단면역이 형성돼 시설 내 어르신들이 보다 편하게 치료받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서울 성동구보건소에서 접종한 이암요양원 요양보호사 황인혜(55) 씨는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어) 혹시 내가 코로나19에 걸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노심초사했다”며 “이제는 어르신들께 폐를 끼칠 일이 없게 돼 마음이 놓인다”고 웃어 보였다. 관악구의 한 요양센터 센터장인 정정희(48) 씨는 “접종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서 직원 모두가 1호로 접종했다”며 “우리 센터에는 65세 미만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직원들이 먼저 접종해야 어르신들도 안전하다고 느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에 두렵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에 용기를 낸 접종자들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서울 서대문보건소에서 접종한 유 모(53) 씨는 “접종 후 30분간 대기했지만 두렵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것”이라며 “비로소 코로나19에서 해방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의료 기관에 배송된 백신은 수령 후 5일 이내에 접종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당국은 연휴에도 접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28일까지 각 요양병원 등으로 배송된 백신을 활용해 연휴에도 접종을 진행할 수 있다”며 “요양시설 등은 보건소와 합의한 일정에 따라 위탁 의료 기관 등을 통한 방문 접종을 연휴에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 김동현 기자 dani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