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곧장 기업들의 체감 경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면서 증시 등 자산 시장에 충격을 주고 경기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과도하게 재정을 풀었던 정부도 이제는 출구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25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0.31달러(0.5%) 상승한 63.5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상품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에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의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을 경영 애로 사항으로 답한 비중은 10.0%로 전달보다 1.2%포인트 높아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해외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불안 요인”이라며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올라 있어 금리를 조정하기에 상당한 부담이 되므로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은 자산 시장에 압력을 주는 요인이다. 이미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적자 국채 발행에 따른 수급 부담으로 국고채 금리는 상승 추세다. 재정 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선거용 현금 풀기를 위한 국채를 더 발행하게 되면 곧 경기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거시 경제 정책을 엑시트(Exit)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걱정을 한다”며 “이제는 재정도 아끼면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연일 고공행진해 이날 장중 한때 1.61%까지 올랐다가 1.54%로 거래를 마친 것은 시장에 퍼진 인플레이션 예상이 가라앉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전날 “금리 인상이나 자산 매입 축소는 당분간 없다”고 못 박았지만 약효는 하루도 가지 못했다. 미국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파월 의장이 언제까지 기존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CNBC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투자자들로 하여금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현재의 완화적 입장을 바꿀 것’으로 예측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연준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제로 금리’와 ‘자산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라는 두 기조를 유지했는데 어느 순간 금리를 올리거나 점진적인 자산 매입 축소(테이퍼링)를 단행할 수 있다는 예상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 모두 증시에는 악재다. 이날 미 증시에서 다우존스지수 1.7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2.45%, 나스닥이 3.52% 각각 하락한 것은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 예상이 투자 심리를 장악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이날 나스닥 하락률은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다. 전날 파월 의장의 발언으로 증시가 급반등한 지 하루 만에 급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파월 의장과 시장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파월 의장은 전날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물가 상승률 목표치에 도달하는 데 3년 이상 걸릴 수 있다”며 금리를 장기간 동결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하루 앞서서는 하원에서 “미국의 경기회복이 불완전하다”며 고용 상황을 보면서 당분간 현재의 제로 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게 파월 의장의 인식이다. 그는 아울러 “추가적인 진전이 이뤄질 때까지 유동성 공급을 위해 국채와 기관의 담보 채권 매입을 현재 속도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경제 상황은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치에서 멀리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징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채권은 물론 주택·원유 등 각종 원자재와 곡물까지 다 오르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원유는 2018년 이후 최고치에 가까워지고 있고 구리는 10년 만에 최고가다. 미국 내 철강 가격은 지난해 8월 이후 160% 상승했고 목재 가격은 두 배 올랐다. 주택 가격은 지난해 14% 상승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