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방향등 안켜고 백색실선 넘어와 충돌·사망한 배달기사…法 “업무상 재해 아냐”

/연합뉴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연합뉴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백색실선을 넘어와 직진 차량과 충돌한 뒤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기사에 대해 법원이 ‘위법한 진로변경'을 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사망한 오토바이 배달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기사 아내 “법 위반 정도 경미…차량 운전자도 과실"

음식배달업체에서 일하던 A씨는 2018년 6월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의 한 도로 4차로에서 3차로로 진로를 변경하다가 직진 중이던 차량에 받혀 사망했다.

이후 A씨의 아내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와 장례 비용을 신청했다. A씨가 배달업무 수행 중 배달을 완료한 후 이동하다가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지급 결정 처분을 했다. 이 사고는 A씨가 무리하게 진로변경을 시도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A씨의 고의에 의한 도로교통법 위반 범죄 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판단에서였다.

B씨는 이 처분에 불복해 심사 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됐다. B씨는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또 기각되었고 이에 행정소송을 청구했다.



B씨는 소송에서 “남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의 예외로 규정된 ‘고의·자해행위·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등의 안전의무 위반 행위만으로는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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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안전운전 의무 위반 행위는 범칙 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는 것을 댔다. 또 A씨와 충돌한 차량의 운전자가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과실이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A씨, 방향등 점등 않고 백색실선·시선유도봉 넘어

그러나 재판부는 “사고는 A씨의 위법한 진로 변경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라며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법원은 “사고가 업무수행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좌회전을 하기 위해 4차로에서 3차로로 넘어왔다고 한다. 4차로는 직진차로, 3차로는 좌회전차로였다.

그러나 A씨는 당시 방향지시등을 점등하지 않았다. 또 A씨가 4차로에서 3차로로 진입한 구간에는 백색실선이 그려져 있었다. 백색실선은 진로 변경을 제한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해당 구간에는 좌회전과 직진차로를 구분하기 위한 주황색 시선유도봉도 설치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사고 지점은 백색실선과 시선유도봉 설치된 시작 지점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차량 운전자의 블랙박스 영상에서는 충돌 6~7초 전에 A씨의 오토바이가 영상에 등장했다고 한다. 차량 운전자는 “오토바이가 4차로에서 시선유도봉 사이를 넘어서까지 3차로로 들어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며 ”(A씨의 오토바이가) 사고 바로 전 4차로에서 정지 중인 것만 기억이 날 뿐 오토바이가 어디서 주행을 시작해서 4차로까지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도 진술하였다.

◇백색실선서 진로 변경 등에 ‘범죄 행위’ 판단

법원은 이같은 사실 등을 이유로 차량 운전자가 앞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과실이 있다는 A씨 아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사고 장소의 도로구조나 도로부속물의 설치 현황 등에 비추어 차량 운전자는 망인이 진로변경을 하리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므로 이 사건 사고의 발생에 차량 운전자의 과실이 경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설령 차량 운전자에게 일부 과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이 이 사건 사고에 기여한 정도가 크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안전운전 의무 위반 행위는 범칙 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위반 정도가 경미하다는 A씨 아내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A씨의 도로교통법 위반 행위가 범죄 행위에 해당하며 사고가 이 범죄 행위가 직접 원인 또는 주된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법원은 “(백색실선이 그어진 곳에서) 망인이 4차로에서 3차로로 진로를 변경한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14조 제5항 위반행위”라며 “3차로를 주행하는 차를 확인하지 않고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진로를 변경한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48조의 안전운전의무 위반행위에도 해당한다”고 했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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