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 물량 측면에서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합니다. 쌀이나 달걀의 경우 이미 정부가 개입해 가격을 안정시키고 있습니다. 국제 곡물가 상승은 당장 국내 물가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할당 관세 등을 적절히 활용해 원가 상승 압박을 겪는 업체들의 어려움을 덜어드릴 방법을 찾겠습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4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당장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는 식탁 물가를 책임지고 있는 농식품부 수장으로서 김 장관은 매주 토요일 전통 시장, 마트, 백화점을 돌며 농축산물 가격을 점검하는 등 비상 상황이다. 김 장관은 최근 대파 가격 급등에 대해 “진도 등 산지의 작황이 워낙 안 좋아 한 단 가격이 1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며 “대파 얘기만 들으면 가슴이 뜨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가격이 급등한 쌀·달걀 등 농축산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게 김 장관의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달까지 쌀 17만 톤을 시장에 풀었고 오는 6월까지 20만 톤을 추가로 공급한다. 달걀도 지난달까지 4,400만 개를 수입한 데 이어 이달에도 2,000만 개를 추가 수입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설 명절을 앞두고 달걀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이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을 살처분한 농가에 재입식(가축을 다시 들임)이 진행되는 만큼 오래지 않아 수급이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 곡물가 상승에 대해서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다. 김 장관은 “이달 말 미국과 남미에서 수확 면적, 파종 면적 통계가 나오면 추세가 더 분명해질 것”이라며 “업계와 조율해 필요한 경우 할당 관세 등은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중장기적으로 김 장관은 농산물 수급 조절을 시스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특정 작물의 가격이 오르면 농민들이 너도나도 해당 작물을 재배해 이후 가격이 폭락하고 폭등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결국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을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관측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생산자단체가 스스로 수급을 조절하는 체계를 갖춰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처음 마늘·양파 의무자조금단체를 설립했고 올해는 농가가 마늘·양파를 얼마나 심었는지 신고하도록 했다. 김 장관은 “자조금단체가 작물을 얼마나 심었고 작황은 어떤지 실측해 정보를 제공하면 수급 조절 메커니즘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성과가 나면 품목을 늘려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곡물 가격 상승에 대응해서는 안정적으로 국제 곡물을 국내에 반입하기 위해 전문성을 가진 민간 기업의 해외 곡물 유통망 진출 확대를 지원하고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여기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밀·콩 등 수입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예산 반영을 확대했다. 김 장관은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곡물의 밸류체인도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지했다”며 “올해 밀·콩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97.3% 늘린 1,831억 원으로 책정하고 자급률도 단계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밀의 경우 2019년 0.7%인 자급률을 내년 2.5%, 2025년 5%로 높인다는 목표다.
AI의 예방적 방역을 위해 ‘질병관리등급제’를 추진한다. 각기 다른 농장별 방역 수준을 평가해 데이터화하고 이에 따라 방역 조치와 각종 지원을 차등화하는 제도다. 가령 우수한 방역 시설을 구축하고 철저히 관리하는 농가는 수평 전파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보고 예방적 살처분에서 제외해주는 식이다. 다만 김 장관은 “예방적 살처분을 면제해준 농가에서 이후 AI가 발생했다면 다른 농가와 똑같이 대우해줄 수 없으니 100% 혜택만은 아니다”라며 “인센티브와 페널티의 밸런스를 맞추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AI 살처분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한 보상도 등급에 따라 차등화할 계획이다. 현재 정부는 역학조사 과정에서 농가의 과실이 없을 경우 살처분 규모에 따라 시가의 80%를 보상한다. 김 장관은 “어떤 농가는 위치도 안 좋고 시설도 열악해 국내에서 AI가 발생할 때마다 걸리는데 이런 농가에도 80%를 보상해야 할지 조금 검토해봐야 한다”며 “이번에 농가들과 함께 만든 데이터를 기초로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포함된 방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한 피해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특정 분야의 경우 국회 심사 과정에서라도 (재난 지원금 지급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피해가 특정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대상을 확정하고 국회에 설명해 예산이 포함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