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 게시판에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추진과 이에 대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동조에 대해 읍소의 형식을 빌려 비판한 평검사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5일 박노산 대구서부지청 형사2부 검사(사법연수원 42기)은 오전10시께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 ‘법무부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는 박 장관이 의원 시절인 지난해 11월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삭감 예산을)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 절실하게 한 번 해보시라”고 말한 것을 차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검사는 “참다못해 빼드신 법무부장관님과 장관님 동지분들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게 생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라며 “ 때가 한참 늦었지만, 제 철없던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며 검찰 동료들의 비뚤어진 마음도 올바른 길로 되돌리고 싶사옵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박 검사는 “아둔한 소인이 나름대로 헤아려 본 장관님의 세 가지 뜻이 맞는지 고개만 끄덕여주신다면, 저희 검찰 기필코 이를 지켜 결자해지할 터이니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옵서소”라고 했다.
먼저 박 검사는 “현재 중대범죄로 취급하여 수사 중인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하여 수사를 전면 중단함은 물론,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의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저희 검찰을 용서해주시겠습니까?”라고 썼다.
또 “당연히, 앞으로도 어떠한 중대범죄, 부패범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조용히 묻어버리고 수사를 금하며 그러한 사실이 절대로 밖에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박 검사는 두번째로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분수를 알고, 일반 국민들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되, 아무리 의심이 들더라도 청와대나 국회의사당 그 밖의 고관대작님들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건은 감히 그 용안 서린 기록을 쳐다보지도 않겠나이다”라며 “이렇게 하면 혹 저희를 다시 품어주시겠나이까?”라고 썼다.
박 검사는 마지막으로 ‘검찰이 수사를 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모순’이라고는 여권 측 주장에 대해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기소 여부 결정’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사실관계와 법리를 조사해보아야 할 것이고 그게 바로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콕 짚어 주소서”라고 했다.
이어 “한 번 그 원리를 응용해볼테니 칭찬해주소서”라며 “판사가 재판절차를 진행했으면 그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여 판결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씀을 하신 게지요?” 등의 예를 들었다. 이어 “장관님과 동지분들께서 모든 행정, 사법기관의 처분권한과 이를 위한 조사권한을 사분오열시키는 법을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저희 검찰도 이를 차질 없이 집행하여 모순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라고 했다.
박 검사는 “글을 올리다 보니 소인의 무지함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습니다”라며 “미리 미리 공부하여 중대범죄 수사도 스스로 금하고, 분수를 알아 높으신 분들의 옥체를 보존하며, 모순되는 행동을 삼갔어야 했건만, 왜 장관님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을까”라고 했다. 이어 “다행히 장관님께서 검찰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시겠다고 먼저 길을 터주시어 위와 같이 여쭙나니, 바라옵건대 장관님의 고매한 뜻을 감추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하명해주시면 저희 검찰, 다시는 거역하지 아니하고 완수하겠나이다”라고 했다. 그는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며 글을 끝냈다. 아래는 전문.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