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국민 여론이 빠르게 악화되자 정세균 국무총리와 여당 인사들이 뒤늦게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총리실은 특히 야당이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사과 등을 요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때 거래 건까지 다 조사하고 있다”고 밝혀 또 다른 정치 갈등의 불씨도 남겼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번 의혹이 민심에 끼치는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해석된다.
정 총리는 8일 정부서울청사 국무총리 집무실에 남구준 초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을 불러 LH 직원의 투기 의혹을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정 총리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파헤쳐 비리 행위자를 패가망신시켜야 할 것”이라며 전례 없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남 본부장에게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LH의 임직원 등 공직자의 신도시 투기 의혹은 기관 설립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 위법 이전에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국토부와 LH 직원을 대상으로 한 총리실 산하 정부합동조사단의 3기 신도시 관련 토지 거래 행위 1차 조사 결과가 이번 주 중 나올 예정”이라며 “조사 결과를 통보받으면 지체 없이 한 줌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는 아울러 국세청·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차명 거래 등 불법 투기 행위를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현재 국수본에 설치된 특별수사단을 국세청·금융위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해 개발 지역의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불법적·탈법적 투기 행위를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합동조사단장인 최창원 국무조정실 1차장은 이어진 브리핑에서 조사 범위를 아예 박근혜 정부 때까지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번 의혹을 현 정부 문제로만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2013년 12월부터 거래한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 1차 발표 절차를 시작한 게 2018년 12월이므로 이때를 기준으로 5년 전부터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주에 발표할 1차 조사 대상은 LH와 국토교통부 직원 약 2만3,000명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정부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구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열린 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강제 수사를 통해서라도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를 포함한 가명·차명 거래까지 있는 그대로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회의에서 “공직자의 투기 이익을 환수하고 취업 인허가를 제한하는 박상혁 의원의 ‘LH 투기 방지법’을 이달 국회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내부 정보 투기 방지법’도 3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다.
들끓는 여론에 국민의힘 또한 재발 방지 입법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국민의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 개발 관련 중대 비리 근절을 위한 입법’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공직자윤리법 개정과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 △부패방지법 개정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이 포함된다. 야당은 이와 함께 LH 투기 의혹을 경찰 국수본이 아닌 검찰이 직접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말대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하니 범죄완판(범죄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하는 상황”이라며 “감사원에서 감사를 착수하고, 검찰이 수사를 맡고, 국정조사를 해야만 이 문제를 국민이 납득한다”고 강조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민주당이 드디어 전 정권 이야기를 꺼낸 것을 환영한다”며 “이왕 하는 김에 정해 놓은 기한 없이 모든 정권에 소급해 철저히 발본색원하길 바란다”고 비꼬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검찰 수사 착수를 촉구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