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봄 처녀


- 고진하


미수가 다 된 어머니가

오늘은 봄 처녀가 되셨다

뒷짐 지고 개울가로 산보 나가셨다가

서너 줌 뜯어온 초록빛 돌나물이

까만 비닐봉지 속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쇠귀에 경 읽기란 말은

가는귀먹은 어머니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눈까지 침침하다 하시면서



못 보고 못 듣는 게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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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 뜯다가 마른 풀섶에 놓인

종달새 알 몇 개를 보고

행여 누가 슬쩍 해갈까 봐

마른 풀로 꼭꼭 숨겨주고 오셨단다

잘하셨다고 칭찬해드리니

어린애처럼 배시시 웃으신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누워

금세 드르릉드르릉 코를 골며 주무신다





봄은 누구라도 처녀로 만들어 버린다. 봄은 누구라도 총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슴속 설렘과 경탄이 남아 있다면 누구든 처녀 총각으로 되돌려놓고 자기를 찬양하게 만든다. 겨우내 쓰러져 있던 생명들을 입김 하나로 되살려 걷게 하고 꽃피게 하니 봄엔 세상의 종교가 하나가 된다. ‘몸’마다 싹 돋는 게 ‘봄’이다. 저 오래된 처녀의 보살핌 덕에 올봄 보리밭 너머 종달새 울음이 한 됫박 늘겠다. 할머니로 나가서 처녀로 다니다 어린애로 돌아오시니 아들은 효도할 날이 구만 리라 좋겠다. 미수를 지나도 천진을 잃지 않으니 콧바람에 흔들리는 우주가 깃털처럼 가볍다.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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