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타격에 저금리와 돈 풀기로 맞서던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조에 차츰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는 국가 간 경제 회복의 속도 차이가 직접적인 트리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인플레이션보다는 경제 불확실성이 더 문제”라고 발언했지만 시장은 되레 미국의 빠른 경제 회복에 주목하는 양상이다. 특히 연준은 19일(현지 시간) 은행의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완화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채 금리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미 브라질·터키 등은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고 러시아·노르웨이·태국 등은 금리 인상 시기를 당초 예상보다 앞당길 태세다. 아직 금리 인상을 주저하는 동아시아 국가도 증시가 요동치는 등 미국발 인플레이션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코스피가 0.86% 하락 마감한 것을 비롯해 중국(1.69%), 일본(1.41%) 등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내렸다. 미 연준이 오는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하루 만에 긴축을 예상한 것이다. 특히 전날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1.75%까지 치솟으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일부 신흥국과 저개발국 중앙은행은 행동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2%에서 2.75%로 0.75%포인트 올렸다. 약 6년 만이다. 터키도 기준금리를 2%포인트 인상했다. 로이터통신은 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러시아가 조만간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봤다.
이들 국가가 선제적 금리 인상에 나서려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 유출 차단이다. 미국이 긴축으로 돌아서면 신흥국은 자본 이탈과 통화가치 하락, 자산 가격 하락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은 경기 부양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올해 양회를 통해 경기 부양의 강도를 줄일 것임을 시사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의 돈 풀기 지속 여파가 중국 금융시장에 예기치 못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민은행 고문을 지낸 황이핑 베이징대 부학장은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연준의 차기 정책 조정”이라면서 “지난 2014~2015년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남아공·러시아·터키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 중국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일부 신흥 시장은 이번에도 비참한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