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가 되면 내가 좀 성숙하고 다를 줄 알았는데, 여전히 미성숙인 채로 나이를 먹었네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야죠.”
올해 여든 살이 된 배우 박정자(사진)가 오는 5월 연극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에서 80세의 ‘모드’ 역할로 관객을 찾아온다. 작가 콜린 하긴스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1971년)에 이어 1973년 연극으로 재탄생한 이 작품은 자살을 꿈꾸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한 80세 노인 모드를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을 배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국내에서는 1987년 초연(김혜자·김주승 주연) 후 총 일곱 차례 공연됐는데, 이 중 초연을 제외한 여섯 번의 공연에 박정자가 출연했다. 박정자는 2003년을 시작으로 지난 18년간 5번의 연극과 한 번의 뮤지컬에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드’를 선보였다. 평소 “80세까지는 이 작품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해 온 그는 극중 배역의 나이가 되어 무대에 오르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모드와 작별한다.
22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정자는 “하루하루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중 모드는 끊임없이 죽음을 선택하려는 해롤드에게 삶의 의미와 재미, 그 치열한 시간을 살아낼 용기를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박정자는 “그 자체로 무공해인 모드는 나의 롤모델"이라며 “2003년 첫 공연을 하면서 나보다 관객들이 더 행복해하는 걸 느꼈고, 그때 내 나이 80까지 이 작품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돌아봤다.
일곱 번째 만남이 될 이번 연극은 배우 본인이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는 무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박정자는 “80세라는 핑계로 이 작품을 올리게 됐다”며 “숫자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저 처음 연극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토록 애착이 있는 캐릭터와 이별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클 법도 하지만, 박정자는 “나는 가볍고 사뿐한 게 좋다”며 “욕심부리지 않고 이쯤까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객석에서 다른 해롤드와 모드의 공연을 즐기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의미 있는 그의 공연을 위해 절친한 후배 윤석화가 연출로 나섰다. 윤석화는 지난 2003년 해롤드와 모드의 제작자로 함께한 바 있다. 윤석화는 “선생님의 80세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이 순간이 왔다”며 “고목(박정자)과 묘목(해롤드 역)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진짜 80세’의 배우 박정자가 선사하는 해롤드와 모드는 5월 1~23일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