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언급하며 연일 북한과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북·중은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중국이 기존의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하며 '반미 전선'을 구축한다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으로선 외교적 고립의 탈출구로 중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미국과 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중국 역시 북핵 해결을 위해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중 간 밀착 움직임은 지난 18∼19일 미중간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에서 파열음이 나온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관계 강화를 담은 구두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확인됐다.
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보낸 구두친서에서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적대 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가명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적대 세력'이라는 표현은 미국 등 서방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지난주 방한 등을 계기로 홍콩과 신장(新疆) 인권 문제 등을 언급하며 중국을 비난한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도 "자국민에 대해 계속해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시 주석도 친서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새로운 정세 아래에 북한 동지들과 손을 잡고 노력해 북·중 관계를 잘 지키고 견고히 하며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세'는 바이든 정부 출범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북한과 중국 비판에 맞서 북중이 연대해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입장에선 최근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사태 등으로 미국과 갈등이 고조되고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믿을 건 역시 중국'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외무성은 자국 주재 북한 사업가를 미국에 넘긴 말레이시아에 단교를 선언하고 미국에도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북중이 미국에 함께 맞서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이에따라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척을 위해서는 북미간 대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북한이 '대화' 대신 '대결'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중국 역시 한미의 '비핵화 역할론'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입장에서는 미중 갈등이란 큰 틀 안에서 국제 정세까지 살피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할지를 고민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행보도 주목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중국과 결속을 다진 뒤 이날 저녁 한국을 찾는다. 이번 방한은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이지만,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미러 관계의 긴장이 높아진 터라 라브로프 장관도 이번 방한에서 미국을 향해 비난 발언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북중 밀착에 본격 가세할 경우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가 더 명확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한국이 대북 정책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은 외교적 이익에 맞게 북중러 대 한미일 간 대립 구도를 만들고 싶어할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그러한 의도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