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공장에서 숙식하며 '라면 왕조' 일구기까지…故 신춘호 농심 회장의 삶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빈소/사진 제공=농심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빈소/사진 제공=농심




27일 영면한 고(故)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생애는 도전의 역사였다. 맏형 신격호 명예그룹 회장이 이끌던 롯데가(家)의 ‘대군’ 칭호를 과감히 던져버린 신 농심그룹 회장은 형의 반대와 가족과의 절연 등 역경을 뚫고 자신만의 라면 왕조를 건국해냈다.



라면 왕조의 시작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농심그룹 회장은 당시 일본 롯데에 재직하고 있던 중 일본에서 유행 중인 라면을 보고 국내 출시를 결심한다. 하지만 신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신 농심그룹 회장은 당시 심정을 1999년에 내놓은 자서전 ‘철학을 가진 장이는 행복하다’에서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인 큰형이 반대하자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초창기 농심 대방공장/사진 제공=농심초창기 농심 대방공장/사진 제공=농심


끝내 1965년 신 농심그룹 회장은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농심그룹의 전신 ‘롯데공업사’를 설립한다. 신 농심그룹 회장의 나이 34세였다. 자본금은 500만원으로 현재 농심 사옥인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공장을 세웠다.

당시 신 농심그룹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며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고 포부를 밝혔다.

긍정적인 전망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농심은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강력한 경쟁자인 삼양라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농심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 확대에 나섰다. '짜장면(1970년)’, ‘소고기라면(1970년)’ 등이 첫 제품으로 출시됐지만 농심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출시된 ‘농심라면’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가 인기를 끌면서 농심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5년 당시 농심라면 광고1975년 당시 농심라면 광고




농심이 커가자 롯데그룹은 롯데라는 사명을 쓰지말라고 신 농심그룹 회장에 통보한다. 결국 신 농심그룹 회장은 롯데공업을 1978년 농심으로 바꾼다. 이후 농심은 라면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첫 히트작은 너구리다. 1982년 출시된 너구리는 첫 반응부터 뜨거웠다. 농심 라면의 첫 대표 메뉴가 탄생한 셈이다. 다음해인 1983년 나온 안성탕면은 농심의 라면 제국 건설에 기름을 부었다. 1983년 이전가지 평균 30% 수준에 머물던 농심의 시장 점유율은 안성탕면 인기를 바탕으로 1984년 40.15%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42.%로 뛰어올라 마침내 시장 지배자로 나서게 된다. 이후 농심은 단 한번도 라면 시장에서 1위를 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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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가운데) 농심그룹 회장이 임직원들과 새로 출시한 컵라면을 맛보고 있다. 벽면에는 '나는 삶의 철학을 가진 인간이다', '나는 경제를 아는 인간이다', '나는 행복한 인간이다'라는 농심의 사훈이 걸려있다./사진 제공=농심신춘호(가운데) 농심그룹 회장이 임직원들과 새로 출시한 컵라면을 맛보고 있다. 벽면에는 '나는 삶의 철학을 가진 인간이다', '나는 경제를 아는 인간이다', '나는 행복한 인간이다'라는 농심의 사훈이 걸려있다./사진 제공=농심


이같은 성과는 신 농심그룹 회장이 직접 발로 뛴 결과다. 1971년 출시된 새우깡의 개발 일화가 유명하다. 신 농심그룹 회장은 연구원들과 함께 1년 가까이 공장에서 가마니를 깔고 자며 4.5톤 트럭 80대 분의 밀가루를 사용해 새우깡을 개발해냈다.

이후에도 신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신제품 개발에 아이디어를 냈다. 미국에서 ‘맛있는 라면 1위’로 꼽힌 신라면블랙의 탄생도 신 회장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신 회장은 2010년 조회사에서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며 프리미엄 라면의 출시를 지시했다. 이에 농심은 2011년 프리미엄라면 신라면블랙을 출시했다. 신라면블랙은 출시 초기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딛고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마지막 떠나는 길도 아름다웠다. 신 농심그룹 회장은 서울대 병원에 10 억원을 기부하며 생을 마갑했다. 농심 관계자는 “고인은 오랫동안 치료해온 의료진과 병원 측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기부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 농심그룹 회장은 유족에게는 ‘가족간에 우애하라’, 임직원에게는 ‘거짓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속의 농심을 키워라’ 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마지막 업무지시는 50 여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이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또 신 농심그룹 회장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농심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제2 공장과 중국 청도 신공장 설립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해 가동을 시작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무엇보다 회사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아갈 것을 주문하셨다”고 설명했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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