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세요. 느껴지시나요? 한 번 끌어안아 보시죠.”
도예가 신경균(57)이 자신이 빚은 백자 달항아리를 만져보라 청했다. 개인전 ‘달빛(Moonlight)’이 한창인 서울 강남구 노블레스 컬렉션을 방문하는 관람객이면 누구에게나 같은 말로 권한다. 귀한 도자기라 주저했더니 이런 얘기를 풀어 놓는다.
“지금은 미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달항아리지만 본래는 장식용이 아니라 조선 시대에 장류 등을 보관하는 용기였습니다. 가마에서 그릇을 구울 때는 그림을 그려 넣은 값비싼 청화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장작불 앞에서 ‘불막이’를 하던 존재가 바로 달항아리인걸요.”
전통가마에서 1,350도 고온을 견디고 살아남은 도자기의 표면이 ‘갓 목욕시켜 내놓은 아기 살결’ 같다. 관람도 멀리서 둥근 윤곽과 형태만 보기보다는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가 빙열의 번짐, 유약에 담글 때 생기는 얼룩까지 찬찬히 살펴보는 게 낫다. 신 작가는 “달항아리가 언제부턴가 범접할 수 없는 완상용이 됐는데, 우리 문화의 일부인 달항아리는 실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쓰임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면서 “달항아리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게 삶과 분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잊힐지 모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만져보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신 작가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한 도예가 장여(長如) 신정희(1930~2007)의 아들로 일찍이 15살 때부터 도예의 길을 걸었다. 우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전국 가마터 300여곳을 답사했다. 그 곳의 흙을 조사하고 도자파편을 주워다 연구했다. 명품을 빚으려면 흙부터 불,물,유약,기후 등 무엇하나 허투루 택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에는 같은 듯 서로 다른 오묘한 색감을 띤 13점의 달항아리가 나왔다. 마치 변화하는 달의 얼굴처럼 다양하고 신비롭다. 그 중에는 흙안에 있던 철분이 녹아내려 유성처럼 떨어진 흔적을 그려놓은 게 있는가 하면, 기괴하게 뒤틀리고 배 부분이 찢어져 벌어진 작품도 있다. 전통을 더듬어 도달한 예술의 흔적이다. 작가는 “전통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머물러 있으면 과거이지 전통이 아니다”면서 “나는 장인에 머무르지 않고 흙과 불로 작업하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회의장에 한국 도자를 대표하는 작가로 초대됐고, 2014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달항아리로 개인전을 열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환영 리셉션에도 그의 도자가 선보이는 등 국가대표 도예가로 활동 중이다. 전시는 16일까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