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늦은 후회


박현


문어는 닮아감이 두렵지 않아

옆에 선 이 생명의 은인 삼는다

검어졌다 희어졌다 빛이 바래도

제 본성 잃지 않고 의연히 산다

산사 가는 길가의 크고 작은 돌

나무를 건너뛰는 다람쥐 놈도

제 몫을 감당하고 당당히 산다

도무지 나란 인사 저만 못하여



나는 나일 뿐임을 자꾸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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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은 걸음 끝 남은 흔적이

얼마나 빛나는지 알려 않은 채

키 크고 번질번질한 사람 꼭 짚어

남의 빈주먹 크다고 부러워 운다

나는 나일 뿐이어서 그저 나인데

나는 단 한 번도 나인 나를

가여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네그려.





검어졌다 희어졌다 빛깔이 바뀌어도 문어를 문어로 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천적을 피하느라 크고 작은 돌 숨 가삐 건너뛰는 다람쥐를 당당하게 봐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보호색도, 달음박질도 필요 없이 뒷짐 지고 걸으며 반성하시는 분 너무 상심하지 마셔요. 아무리 빛깔을 바꾸어도 어부는 돌 틈에서 문어를 찾아내고, 다람쥐가 아무리 당당하게 살려 해도 산을 깎거나 보호하는 건 사람들이 결정하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지닌 가장 초라한 것마저 부러워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시인 반칠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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