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글라스 여주공장의 용해로가 무너져 최소 4개월 동안 판유리 생산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업계는 생산 설비가 노후하고 장기적 관점으로 보수(補修)하지 않은 것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국내 판유리 시장 점유율 1위인 KCC는 2위 업체인 한글라스와 손을 잡고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알려졌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KCC는 판유리 생산라인 설비 일부가 파손됐다고 공시했다. 당시 회사 측은 “재고를 활용하고 긴급보수를 통해 영업활동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긴급보수에 4개월이 걸리고 이를 대체할 설비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회사는 예비 용해로를 가동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가용연수가 얼마 남지 않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태다.
긴급보수로 급한 불을 끄더라도 문제 재발의 불씨는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용해로 등 주요 생산설비의 가용연수는 평균 20~30년 정도다. 따라서 가용연수를 채우기 전에 미리 장기보수 계획을 세워 놓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장기보수는 ‘냉간보수(Cold Repair)’ 방식으로 진행되고 최소 1년 정도가 소요된다. 장기보수를 성공적으로 끝내면 설비의 가용연수는 20~30년 늘어난다. 반면 긴급보수 기간은 4개월 정도로 장기보수에 비해 짧지만 사용기간은 5~6년 늘어나는 것에 그친다. 관계자는 “KCC가 긴급보수로 이번 문제를 넘기더라도 문제가 다시 발생하기 마련”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미래를 대비해 장기 보수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한글라스(한국유리공업)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글랜우드가 인수한 뒤 1,300억 원을 투자해 생산설비를 현재 기준으로 20~30년 추가 사용할 수 있도록 장기보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사태가 국내 유리 산업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유리는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쳐 일반건축용 유리, 코팅건축용 유리, 자동차 유리 등으로 나뉘어 시장에 공급된다. 최근 판유리는 중국발 공급 제한 등으로 물량 부족 현상을 보인 데다가 컨테이너 부족 등으로 가격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KCC발 물량 공급 차질은 시장의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 중 판유리 원판을 제조하는 곳은 KCC글라스와 한글라스(한국유리공업) 두 업체 뿐이다. 양사의 판유리 시장 점유율을 더하면 70~80% 수준(KCC글라스 50~55%, 한글라스 20~25%)에 달한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한글라스가 원판 유리를 추가 생산할 여력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긴급보수에 들어가는 4개월 동안 한글라스가 KCC의 판유리 물량 공급을 도와줄 계획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지원 물량은 정해진 바 없으나 대략 1만2,500톤 규모가 될 전망이며 정식 계약은 양사의 대표이사가 협의해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약서에는 추후 한글라스가 유사한 문제 상황에 처할 경우 KCC가 물량 공급을 도와주는 ‘상호부조’ 형식의 내용도 추가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KCC 관계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판유리 지원을 문의한 것은 맞지만 정식계약은 아직 맺지 않았다”며 “긴급보수와 동시에 장기적인 보수 계획도 마련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강민제·박호현 기자 gg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