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 ‘진상 고객’을 진정시키는 마법의 질문







44년 동안 정말 끝까지 소통이 되지 않았던 고객은 한두 명으로 기억한다(이 고객들은 회사 법무팀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그 외 수천여 명의 고객은 대부분 대화만으로도 엉킨 마음을 풀어주었다. 명함을 받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설명해드린 것이 전부인데 고객들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러고는 언제 트러블이 있었냐는 듯이 또 호텔을 찾아주시니 고마운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진상 고객’이라는 단어보다 ‘애정 고객’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애정이 있어야만 지적도 한다. 애정 고객은 또 찾아올 고객이다. 관계라는 것은 투명해질 때 더 견고해지는 것 같다. 명함을 받고 당신과 내가 잠시라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관계가 한 겹 더 두터워지고 단단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권문현, ‘전설의 수문장’, 2021년 싱긋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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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째 호텔리어로 일하고 있는 권문현 지배인은 전설적인 도어맨이다. 그는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냐’며 갑질하는 이들 앞에서도 ‘사람끼리 말로 해결 안 되는 게 어디 있냐’는 태도로 우선 이야기를 듣는다. 다들 기피하는 ‘진상 고객’을 그는 ‘애정 고객’이라 부른다. 다소 거친 방식일지라도 자신의 사용후기를 전하고 개선점을 요구하며 답을 듣고자 하는 고객들은 그에게 ‘애정 고객’이다. 이러한 ‘진상 고객’과 대화를 시작하는 권 지배인만의 마법의 질문이 있다.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습니까?”

권문현 지배인은 ‘그게 아니라’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그저 당신이 누구인지 묻고 가만히 듣는다.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약간 잦아드는 것을 목격한다. 어떤 사람을 ‘진상’이라고 낙인찍은 순간부터 우리는 대개 듣기를 포기하고 빨리 치워야 할 인간으로 취급한다. 전설의 호텔리어는 오늘도 ‘애정 고객’이 찾아오면 미소를 띄운 채 명함을 받고 일단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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