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흰 눈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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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겨울왕국을 하얗게 뒤덮던 눈, 봄바람 불수록 시나브로 사라지더니 나뭇가지마다 흰빛으로 오시는군요. 매화나무에도 벚나무에도 소복소복 쌓이는군요. 목련 가지마다 주먹눈 뭉쳐 들고 눈싸움 하는군요. 나무에 피어오른 눈은 입김 불어도 녹지 않고, 벌 나비가 앉아도 발이 시리지 않겠군요. 등 굽은 할머니가 자신도 모르게 꽃을 피우는군요. 봄바람에 사라진 흰 눈들이 꽃눈과 잎눈으로 돌아와 앉는군요. 가운을 휘날리며 눈 틔우는 바람은 안과 의사로군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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