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암 정약전과 그가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조명한 영화가 상영 중이다. 정약전은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신유사옥 때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목으로 흑산도로 유배됐다. 흑산도에서 남긴 저서 중 ‘자산어보’만 필사본으로 전한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후세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1814년 흑산도에서 완성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흑산도 주변의 물고기와 해양생물 226종이 수록돼 있다. 이름과 분포, 형태, 맛, 습성과 약용 등을 기록했는데 다양한 문헌을 참고하고 이에 대한 분석과 의견을 밝히고 있다. 자산어보는 가장 많은 해양생물이 수록됐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분류 체계의 수립과 해부까지 한 과학적 관찰의 결과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생물 전문서로 꼽힌다.
그런데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선 180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전문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가 쓰였다. ‘우해이어보’를 지은 이는 담정 김려(1766~1822)인데 신유사옥 때 천주교도와 교유관계가 있다는 죄목으로 유배를 갔던 인물이다. 김려는 유배지인 경상도 진해(현 창원시 진동면)에서 이전까지 본 적 없는 다양한 해양 생물을 접하고 놀라움과 호기심에 이를 관찰해 기록했다. ‘우해이어보’는 우해에 사는 특이한 물고기 기록이라는 뜻인데, 우해는 진해의 별칭이다. 김려의 문집 ‘담정유고(?庭遺藁)’ 8권에 실려 있으며, 어류 53항목, 갑각류 8항목, 패류 11항목 등 총 72항목이 수록돼 있다. 저자는 명칭, 분포, 종류 뿐만 아니라 어획과 조리방법, 유통과정까지 기록했다. 어류와 관련된 시를 김려가 직접 지어 수록한 점이 독특하다. ‘우해이어보’는 경남 창원 연안의 해양 생물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전문서다.
같은 사건으로 유배를 당해 한 사람은 경상도 남해안에서, 한 사람은 전라도 서해에서 해양생물을 기록한 것이 흥미롭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19세기 조선 사회에 축적된 학문적 성과와 외래 학문의 수용으로 백과사전류가 많이 편찬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배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나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정창운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