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최태원·구광모 회동→수뇌부 비밀협상…'바이든 거부권' 전날 극적 반전

■LG-SK 합의 막전막후

2019년 4월 '영업비밀 침해' 소송

난타전 펼치며 "타협 없다" 으름장

지난달 31일 최태원·구광모 만나

배터리 언급 없었지만 해결 공감대

최고위급만 참석해 극적합의 도달

지난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두 번째) LG그룹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두 번째) LG그룹 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놓고 2년 넘게 분쟁을 벌여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양 사 최고위급 경영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회사 내부에도 알리지 않을 정도로 극비리에 극적 합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홍보실 임원과 관련 부서 실무진도 모를 정도로 진행돼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양 사는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면서 좀처럼 합의의 가능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미 정부의 지속적인 합의 압박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시한을 하루 앞두고 전격 합의라는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날 선 감정싸움은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00명에 이르는 LG화학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동하자 LG는 SK가 배터리 핵심 기술을 빼내기 위해 자사 직원을 의도적으로 데려갔다고 의심했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이 2018년 폭스바겐으로부터 대규모 수주를 따낸 것이 양 사 갈등이 결정적으로 치닫는 계기가 됐다. 이에 LG화학은 2019년 4월 결국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 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LG와 SK의 ‘배터리 전쟁’의 서막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2월 모회사인 LG화학으로부터 분할 설립되면서 배터리 소송 건도 승계를 받아 진행 중이다.




양 사는 ITC 영업 비밀 침해 분쟁이 시작된 후에도 서로를 상대로 특허 침해 사건을 제기하는 등 치열한 법적 공방과 여론전을 이어갔다. 2019년 9월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회동하며 최고위급 경영자들의 대화로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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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2월 법적 공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ITC가 SK이노베이션이 고의로 문서를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이 있다고 판단하는 예비 결정을 내리며 LG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종 결정도 LG의 완승이었다. 지난해 10월에서 세 차례 연기 끝에 2월 10일 ITC는 SK이노베이션에 미국 내 10년간 수입 금지 제재라는 무거운 판결을 내린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 사가 적절한 선에서 합의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다. ‘10년 수입 금지’는 SK 내부적으로도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강한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 물꼬가 트이기는커녕 두 회사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합의금 규모를 둘러싼 이견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LG는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겠다”고 강수를 뒀고 SK는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경쟁사의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K배터리’의 큰 축을 담당하는 양 사의 싸움에 한미 정부도 화해를 촉구했다. 1월 정세균 국무총리는 “양 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며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드리면 되느냐.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했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부담이 커지기는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조지아주를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는 미국 내 일자리 유지,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 등을 이유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압박했지만 영업 비밀 침해와 관련해 대통령이 ITC 결정을 뒤집은 사례는 없었다. 이에 미 행정부는 지난 몇 달간 SK와 LG 대표단들을 만나며 화해를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미 안보실장회의에서도 양측의 배터리 분쟁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논의에 결국 총수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31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대표가 참석했다. 당시 이 자리에서는 배터리 소송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각 그룹의 총수가 함께한 자리인 만큼 양 사 합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실무진 만남의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합의 논의에 급물살을 탄 LG와 SK는 10일 회의를 열고 협상을 진행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미국에 체류 중인 관계로 화상회의를 통해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함께 양 사 수뇌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배상금에 전격 합의했다. 2년 넘게 이어진 배터리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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