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피아노는 나의 대사요 노래요 춤" 뮤지컬 피아니스트 조재철

뮤지컬 '포미니츠'서 주인공 감정 연주로 표현

클래식 전공 중 '재미'로 참여한 뮤지컬 연주

"솔로이스트서 협업 작업 매력 푹" 진로 바꿔

"단순 반주 아닌 뮤지컬 피아니스트 길 넓힐것"

뮤지컬 ‘포미니츠’에서 주인공 ‘제니’의 감정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조재철/사진=오승현기자뮤지컬 ‘포미니츠’에서 주인공 ‘제니’의 감정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조재철/사진=오승현기자




무대 위 주인공이 허공에 대고 피아노를 연주하면 격정의 멜로디가 객석을 휘감는다. 때론 분노를 품은 강렬한 타건이, 때론 비명을 토해내는 듯한 선율이 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의 감정을 오롯이 펼쳐 보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공의 연주를 이어가는 배우, 그 무대 왼쪽 어둠 속에 선명한 핀 조명 하나가 떨어지고, 피아노 앞에 앉아 진짜 연주를 이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반주자 아닌, 또 다른 배우로서 110분의 공연 동안 ‘피아노’라는 명대사를 선사하는 피아니스트 조재철(사진)이다.



지난 7일 개막한 뮤지컬 ‘포미니츠’는 아픔을 지닌 18세의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와 여성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온 크뤼거가 교도소에서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 피아노 연주는 ‘글자 대신 음표로 구성된 지문’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단순한 노래 반주가 아닌,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 매개체로 극 전면에 자리한다. 주인공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장면도 물론 있지만, 음악의 기술적인 난도는 물론이요, 깊이 있는 표현을 위해 전문 연주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맡은 게 바로 피아니스트 조재철이다. 개막 전 막바지 연습 중 만난 조재철은 “그야말로 영혼을 쥐어짜며 연주해야 하는 작품”이라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같은 배우라도 그때그때 다른 감정과 호흡하며 연주로 풀어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어려운 점이자 매력”이라고 웃어 보였다. ‘영혼을 쥐어짠다’는 말이 괜한 엄살은 아니었다. 극 중 제니는 수시로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며 폭력적인 감정을 내뿜는데, 그때마다 건반을 부술듯한 강하고 휘몰아치는 연주가 등장한다. 특히 공연 말미 ‘4분간’ 조재철과 제니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듀엣은 단순 연주를 넘어 피아노 줄을 뜯고 두드리고 발을 구르는 등 두 사람의 진을 빼야 완성되는 ‘극한의 장면’이다. 조재철은 “마지막 장면에선 연주가 아닌 ‘내가 제니의 영혼이다’라고 생각한다”며 “주말에 2회 공연을 하면 탈진할 것 같다”고 엄살을 부렸다. 조재철은 이번 공연에서 또 다른 피아니스트 오은철과 번갈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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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포미니츠’에서 주인공 ‘제니’의 감정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조재철/사진=오승현기자뮤지컬 ‘포미니츠’에서 주인공 ‘제니’의 감정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는 피아니스트 조재철/사진=오승현기자


조재철은 지난 2018년부터 ‘뮤지컬 피아니스트’라는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 오고 있다. 예고-음대로 이어지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정석만 걸어왔던 그는 뮤지컬 음악 감독 이범재의 제안으로 ‘오디너리데이즈’에 참여하며 이 분야의 눈을 떴다. “클래식은 혼자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만드는 뮤지컬 제안이 흥미로웠죠.” 물론 이 첫 만남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 ‘나는 피아노만 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피아노 역할이 중요한 작품이라 ‘나도’ 전체 서사를 끌어가야 했다”며 “혼자 연습해서 망해도 나만 망하는 게 아닌, 내 부족함이 모두에게 폐를 끼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힘들었던 작업이건만, 자꾸 생각이 났다. “시간이 지나니 고됐던 기억이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아있더군요. 그즈음 이범재 감독님이 또 한 번 제안을 주셨고, 그때 뮤지컬 분야에서 제대로 해보자는 결심이 섰어요.” 그렇게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초·재연, ‘라 루미에르’ 등 피아노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에 참여하며 경력을 키워가고 있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반주자’일 뿐일 테지만, 조재철은 스스로를 ‘공연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대본을 분석하고, 연습에 참여해 드라마의 디테일을 함께 완성해간다. 여느 배우와 다를 것 없는 이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른다. ‘피아노 연주’라는 대사와 노래, 춤으로 말이다. 조재철은 “관객들의 시선은 당연히 배우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그 관심을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음악팀으로도 확대하는 것이 내 목표”라며 “무대의 일원으로서 더 열심히 연주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피아노로만 뮤지컬 곡을 연주하는 프로젝트(히즈피아노)도 이범재 감독님과 진행했다”며 “앞으로 이런 식의 ‘또 다른 활동’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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