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참 어렵고 또 어려운 질문이다. 공유는 이 어려운 질문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명확한 답이 없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 ‘서복’은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 고난도였지만 큰 자극이었다. 관객과 같은 것을 느끼고자 하는 목표 하나만으로 치열하게 부딪혔다.
15일 개봉한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과, 모종의 음모에 휘말린 그를 지키려 위험에 맞서는 전직 정보요원 기헌(공유)의 이야기다. 공유는 뇌종양 교모세포종으로 1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의 두려움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기헌을 연기했다. 그는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서복과 대치하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난 다음에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던지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눈이 가요. ‘서복’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그 질문에 답하고 싶은데 마땅히 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정확한 답을 찾을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답을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이 영화가 궁금해졌어요. 역으로 제가 느낀 마음을 관객도 느끼면 어떨까 싶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공유는 작품을 선택하면서 이용주 감독과 계속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무겁고도 어려운 주제에 “감히 동참해도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와 거절도 했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9년간 ‘서복’만을 위해 달려온 이 감독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감독과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깊이 고민하고, 서로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서복’에 마음을 담갔다.
“모든 게 완성된 것은 언론 시사회에서 처음 봤어요. 제가 SNS를 안 해서 시사회 직후 반응은 보지 못했는데, 팬카페에 팬들이 올려준 걸 보니 좋은 말도 있고, 안 좋은 말도 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애초에 감독님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간 것 같아요.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만족해요.”
시한부, 그리고 동료의 죽음에 매몰된 삶. 기헌은 절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캐릭터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계산이나 고민을 갖고 임하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풀어가려고 했다. 그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기헌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까지 감량해 수척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관객들에게 “너무 늙었다” “얼굴이 상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화하고 싶었지만, 급격하게 얼굴이 수척해지자 이 감독이 만류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더이상의 체중 감량은 중단했다.
“처음 영화를 찍을 때 감독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관객이 기헌의 입장에서 서복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처음 기헌을 봤을 때 어떤 삶을 살았는지 고충이나 고통을 온전히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유가 해석한 기헌의 입장에서 바라본 서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복제인간이기 이전에, 어린 동생 같은 존재다. 기헌은 한 평생을 실험실에서 실험체로만 살아온 서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질감도 느끼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 공감도 얻는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서복이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외형을 갖고 있는 복제인간이지만, 영화상에서 감독님이 원했던 부분은 서복은 일정 부분에서 신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에요. 신이 유약한 인간에게 ‘너를 살릴만한 가치가 있냐’고 가혹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하지만 민기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렇듯 ‘서복’은 공유와 박보검의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이다. 후배 배우와 단 둘이 영화를 이끌어간 것이 처음이라는 공유는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박보검이 잘 따라와 주고 때로는 먼저 이끌어준 덕분에 좋은 호흡을 보일 수 있었다고 평했다.
“모든 작품에 만족하는 배우나 연출은 없을 거예요. 저도 매번 작품을 하고 여러분에게 보여주면서 ‘이번에 정말 만족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이번에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박보검이 워낙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성향의 사람이고, 나도 그런 성향이라 함께 잘 맞춰 찍었어요. 박보검이 나를 믿어주고 의지해 줘서 고마웠어요.”(웃음)
최선을 다한 작품이기에 계획한 대로 팬들에게 선보이면 좋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차례 개봉이 연기돼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해 12월 개봉을 확정하고 일정에 맞게 홍보를 했다가 갑작스럽게 미뤄진 상황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극장과 OTT 서비스에서 동시 개봉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게 다가온다.
“(코로나19는) 누구나 겪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에 있어서 불평불만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걸 알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극장과 동시에 OTT 서비스로 선보일 수 있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 같고요. 긍정적으로 바라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것도 있지만 앞으로는 더 이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요.”
‘서복’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공유는 이제 연이어 영화 ‘원더랜드’,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등을 선보인다. 다작을 하지 않는 배우로 보이기도 하지만, 항상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필모그래피는 배우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현재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직 젊지만 세월을 피하지 못할 거예요. 이 나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제약이 커질 텐데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생각이에요. 마음에 들고 관심을 끄는 역할이 많이 나타나길 바라요. 먼 훗날에 많은 이들이 내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공유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해요.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주고,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느껴진다면 저는 그런 배우일 거예요.”
필모그래피의 가치를 알고 있는 공유에게 ‘서복’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가치관의 변화가 생긴 것. 비단 한 작품 때문만은 아니지만 ‘서복’을 통해 확고해진 것은 분명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앞서 고민하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어느 순간 그런 고민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내 앞에 놓인 것에 충실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어요.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그동안 몰랐던 것 같아요. ‘서복’이 그런 부분을 굳건하고 견고하게 만들었어요. 오늘 하루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고, 하루 동안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말들과 행동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어요. 앞으로 그렇게 살아보려고요.”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