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카스트로(89) 쿠바 공산당 총서기(제1서기)가 형인 피델 카스트로(1926~2016)로부터 총서기직을 물려받은 지 10년 만에 사임한다. 62년간 이어진 카스트로 형제 통치 시대가 마감하는 것은 물론 쿠바혁명 세대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된다.
카스트로 총서기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사임 의사를 공식화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2016년 공산당 전당대회 당시 “다음 전당대회에서 더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겠다”고 말했는데 5년 후 약속대로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다.
라울은 쿠바혁명에서 여러 전투를 지휘하며 공을 세웠고 1959년 친미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선 후 국방장관, 국가평의회 부의장, 공산당 부서기(제2서기) 등을 맡아 50년 가까이 형 피델을 보좌했다. 혁명 이전 멕시코에서 체 게바라(1928~1967)를 만나 그를 피델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도 라울이다.
그러나 사실 라울은 쿠바혁명 과정에서도, 이후 혁명정권에서도 언제나 다섯 살 위인 형 피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인물이다. 그러던 중 피델은 1997년 일흔을 넘긴 후 라울을 후계자로 승인했고 2006년 피델의 건강이 악화하자 라울이 사실상 통치권자 역할을 했다.
이어 2008년 형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공식 선출됐고 2011년에는 쿠바 최고 권력인 공산당 총서기 자리까지 물려받았다.
피델이 카리스마적 리더였다면 라울은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통했다. 그러나 쿠바를 이끌기 시작한 후에는 실용주의를 표방해 개혁과 개방을 꾀했다. 2015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교섭해 국교 정상화를 이뤄낸 것도 라울이었다. 이 같은 라울의 조용한 리더십은 쿠바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라울이 사임한 자리는 미겔 디아스카넬(60) 쿠바 대통령이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9일 공식적으로 이어받게 된다. 그는 쿠바혁명 이후 출생한 세대다.
현재 쿠바의 상황은 좋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때 미국과의 관계가 다시 경색됐고 경제 상황도 악화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살아 있는 한 내 조국과 혁명·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발을 등자에 디딘 채 항상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준호 기자 next@sedaily.com